“향기나는 나무는 굳이 바람부는 언덕에 서지않는다”절망 딛고 정상에 다시 선 행운의 주인공의
「웃으실지 모르지만, 전 지금 행복합니다.
한차례의 태풍이 지나가고 난다음에 느끼는 고요함과 평화라고나 할까요.
언제나 좋은 시절 보내는 동안에는 보다 큰일을 생각하고 앞날을 대비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죠.
모든 변화는 갑자기 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모든 것을 부정해야하는 하나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기존의 질서붕괴가 보다 개성적이고 문화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또하나의 시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재기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컬렉션장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실력과 인기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국내 몇안되는 남성복 디자이너중 하나다.
될 수 있는대로 무대 앞에 바짝 당겨 앉으려는 학생들과 이들을 포토라인 밖으로 안내하려는 스텝들간에 약간의 실갱이가 지나가고 시그널 음악이 시작되면 장내를 꽉채운 관객들은 시종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잘 발달된 상체근육을 그대로 노출시킨 모델들이 팬티 한장만 달랑 걸친 채 런웨이를 걸어나오거나, 완전포멀 웨어를 갖춰 입었지만, 돌아서면 빨간색 하트모양으로 엉덩이를 완전히 노출하여 폭소를 유도하는 위트와 파라독스…
그는 분명 전통적으로 근엄한 국내 남성복 시장에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디자이너였다.
언제나 언밸런스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토록 대담하고 섹시한 남성미 넘치는 쇼가 끝나면 박수소리와 함께 뛰어나오는 흰색셔츠에 검정바지를 입고 소년같이 해맑은 모습.
그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에 관객석은 또한번 컬렉션을 보는 기쁨을 만끽하며 함성을 아끼지 않는다.
모두가 그를 사랑했으며, 하늘을 찌를듯한 그의 성공을 예찬했다.
어쩌면 그는 이런 환호에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브랜드 ‘카루소(CARUSO)’도 대한민국의 젊은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민브랜드가 되었을만큼 승승장구를 기록했다.
그러나 어느순간 그는 정말 믿을 수 없을만큼 순식간에 수렁에 빨려들어 갔다.
확대되어가는 명성과 재물의 무게에 감당할 수 없이 불거져 나오는 거짓과 위선들…
그런 고통의 순간들을 통해 그는 비로서 ‘사람들이 고개숙이는 것은 나자신이 아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액세서리일 뿐이였다’는 진리와 자의든 타의든 모든 신기루가 사라졌을때 비로서 깨닫게 되는 값비싼 겸손을 배웠다.
그 엄청난 혼란은 그에게 ‘성실’과 ‘인내’를 끝없이 요구했다.
그리고 인기절정의 홈쇼핑과 그의 명성의 만남은 절묘해서, 그의 브랜드 ‘카루소’는 그를 다시 일어나게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남성복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여줬으며, 그도 직접 소재부터 꼼꼼히 관리하는 정성을 들였다.
과장을 배제한 편안한 옷들이 TV망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카루소는 여전히 매주 1차례의 고정 방송에서 8억원대의 매출을 올릴 정도의 인기를 확인해 주었으며, 이제 그는 나락에서 다시 정상을 확인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향기나는 나무는 굳이 바람부는 언덕에 서지 않는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화려함을 강조하지 않아도, 있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향내를 낼 수 있는 디자이너로서, 성실한 인격과 성품으로 경쟁무대는 세계라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요즘같이 너도나도 튀어야 하는 세상에 ‘겸손’이란 바보짓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침이 마른 찬사는 보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명백히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죠”라고 웃는 장광효씨.
사람들은 이제 진실을 가려내기 시작했다.
그 자신도 이제 외적인 조건에 칭찬만을 기다리는 것 아니라, 비올때를 준비하는 철저한 베테랑의 자리에서 패션을 바라보게 되었다.
성공과 좌절 그리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선 그의 석세스 스토리는 외견과 표면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카리스마적인 자신감만으로 표현되던 패션세계가 이제는 완성된 인격과 실력, 그리고 성실함으로 재무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향기나는 나무는 굳이 바람부는 언덕에 서지 않는다’는 金句는 실로 이시대의 참으로 적절한 잠언이 아닐 수 없다.
/유수연 기자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한국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