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한국섬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인(戊寅) 새해로 접어들면서 “또 한해가 바뀌었구나-싶
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는데 그 1월도 벌써 후닥닥 흘러가
고 입춘(立春=4일)을 잉태한 2월 이다.
1월내내 봄날같이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지난 월말에서
야 폭설(暴雪)과 폭풍우가 곳곳에서 맹위를 떨치면서 적지않
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피해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어쨌거나 2월은 <겨울>과 <봄>의 중간이 틀림없다.
매화가 빵긋거리고 미나리 싹이 돋고 동백꽃이 봉오리진 것
을 보게 될 때엔 분명히 봄이 가까와졌다는 느낌을 준다.
▼보이지도 않고 알수도 없는
불어 온 바람 속.
살은 듯 죽은 듯
나는 향기.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우연인가 혹은 요정(妖精)인가
오기가 무섭게
일은 끝났다.
읽히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는
가장 우수한 정신에도
그 얼마나 많은 착오(錯誤)가
약속됐던가.
보이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속옷으로 갈아 입을 때
언뜻 보이는 젖가슴 같은!
이것은 “폴·발레리”의 「바람의 요정」이란 시다.
요정과 같은 신비로운 2월의 쌀쌀한 바람의 조화를 읊은 것
이라고나 할까-.
▼IMF의 한파가 거세게 불어닥쳐 움츠렸던 지난달이었지만
절기는 하는수 없어 또 이달 19일이면 우수(雨水)다. 봄의
서곡이 서서히 울려퍼지려한다.
-“봄이 멀지 않다”는 생각… 그것은 하나의 희망이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하나의 위로일 게다.
꽃등인냥 창 앞에 한 구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에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나다가
이 보오얀 봄 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가지에 여운(餘韻)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적은 길이어.
▼담담한 수묵화를 보는듯한 「춘신(春信)」이라는 “유치환
”의 시다.
-어느 시골산골 지붕 위의 잔설(殘雪)이 따스한 햇볕에 녹아
흐르는 소리가 진종일 가슴을 설레게 할 것만 같다.
그러한 어느 날 들에 나서 보면 초목들은 시들은 채 황량한
겨울자태 그대로지만 저기 금잔디 언덕위에 아른거리는 <아
지랑이>는 분명 무슨 유혹처럼 손짓을 하리라.
그렇게 되면 머지 않아 파릇 파릇 돋아날 초목들이 이 넓은
들을 모조리 덮어버리리라.
생각만 해도 자연의 오묘함에 그저 탄사가 터져 나올판이다.
▼백설(白雪)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운 매화는 어늬곳에
피엇는고
석양에 호올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매화 옛 등길에 춘절이
돌아오니
옛 피든 가지에
피임즉도 하다마는
춘설이 하 분분하니
필동 말동 하여라.
▼-소매속으로 파고드는 찬 바람에 춘설(春雪)마저 휘날리는
어느 창가에서 모진 일들 잠시 잊고 이런 옛 시조라도 읊어
보고파지려니-.
趙 能 植 (本紙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