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재미있는 리즈너블 패션…대중적 라이프 스타일 접목
시대를 표현하는 방법 아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스타덤
1955년에 미시건 주의 중국계 미국인으로 태어나서 전형적인 어메리컨 라이프를 즐긴 소녀시절의 안나 수이는 인형놀이가 좋아서 디자이너 되기를 결심했다.
유년시절의 어느날 남자친구들과 장난감 병정놀이를 하고 놀다가 싫증이 난 나머지 아카데미 시상식 게임을 하던 그소녀는 3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정확히 그녀가 원하던 길을 가고 있다.
여배우 앤디맥도웰이나 마돈나, 린다 에반젤리스타 같은 톱모델도 즐겨입는 옷. 물론 평범한 소녀들도 그의 취향을 받아들이기 쉽다.
콜렉터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5살때부터 패션잡지의 섹션을 모으기 시작했다.
보그를 중심으로 한 각종 패션에 대한 이 모든 자료는 후에 그가 유명하게 되었을 때 안나수이의 인스피레이션 소스, 즉 천재의 파일이 되었다.
1973년∼75년까지 뉴욕 퍼슨즈에서 공부하면서 70년대 뉴욕 펑크 씬을 접하면서 그의 디자인 세계는 크게 바뀌었다.
졸업후에 스포츠 웨어 회사에서 일을 했으며, 이태리 패션 잡지 ‘레이’의 슈팅으로 퍼슨즈의 시절에 알았던, 사진가인 스티븐 마이젤의 스타일리스트가 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80년에 열은 작은 쇼에 내놓은 옷이 메이시즈와 블루밍 데일즈에 팔렸고, 운이 좋게도 그해 크리스마스의 윈도우 장식으로 채택되면서 그의 세계는 또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80년 후반에는 당시 신인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아넷 브란델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드디어 1991년에는 돈대신 옷을 주기로 약속한 나오미, 린다, 크리스티등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첫번째 런 어웨이 쇼를 실시했다.
그의 쇼는 센세이셔널 했다.
당시 뉴욕 타임즈에 실리면서, 90년대 복고 스타일의 스타트를 끊은 것은 물론, 그의 옷을 입은 모델들은 그런지, 펑크, 리바이블의 파도를 탔으며, 뮤직 씬에 민감한 쇼로서 그의 패션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의 일부가 되었다. 그야말로 리즈너블한 모델들의 붐을 만들어 낸 것이다.
1991년에는 드디어 사무실을 얻어 나오게 되는데 그녀의 동기가 너무나 소박하다. 어느날 벼룩시장에서 너무 맘에 드는, 자신의 작업대로 쓰기에 적합한 테이블을 발견하였는데 그녀의 아파트에는 너무 큰사이즈여서 할 수 없이 사무실을 구하게 되었단다.
패션은 라이프 스타일의 일부이고 리즈너블 하므로 즐길 수 있다고 안나 수이는 말한다.
사랑하는 과거의 패션에 로큰롤로 양념을 묻힌, 어딘가 즐거운 듯한 여자아이들을 위한 옷.
시대를 표현하는 방법을 피부로 알고 있는 안나는 자신만의 세계를 시대에 탑재한 새로운 디자이너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