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자 여사
최초 패션쇼·한일 친선쇼
63년 日테이진사 주최 서울·도쿄서 친선쇼
이방자 여사등 귀빈 참석 대성황
디자인 모델료 지불받은 최초 행사 기록
1957년 10월 오랫동안 열망해 왔던 최초의 패션쇼가 반도 호텔 다이내스티룸에서 열렸
이날은 30년 가까운 양장계 생활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감회 깊은 날이기도 했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발표회라는데서만 오는 감상은 아니다.
국제 양장사의 단골 고객들을 비롯해서 평소 친분이 있었던 여류 문인들의 적극적인 권유등 주변의 격려가 없었다면 나의 이 패션쇼는 좀더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쇼의 사회자는 당시 인기 작가였던 고 김말봉 여사로서 재치있고 해학적인 말솜씨로 발표회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었다.
지금도 무대위에서 인사말을 하는 내모습과 여류 문인회를 대표해서 한무숙 여사가 전해준 꽃다발의 향기가 코끝에 감도는 듯 그날의 감격은 늘 새롭다.
한국 최초로 여원의 모드란을 맡았을 때 못잖게 고심하고 내 온 능력을 다 기울여 마련한 50여점의 작품은 여대생이나 직장여성들을 위한 평상복 및 정장과 이브닝 드레스 등 파티복이 주류를 이뤘다.
모델로는 김백초 여사, 인기배우 윤인자, 김미정씨등이 무대에 올랐지만, 요즘처럼 전문 교육을 받은 직업모델이 아니였으므로 다소 서투른 점은 없지 않았지만 무대나 영화에서 갈고 닦은 연기력과 빼어난 미모로 분위기는 한껏 살려 주었다.
그러나 사실 모델들이 본격적인 모델비를 받고 활동한 것은 63년 한일 친선 패션쇼부터였다.
63년 초여름 서울과 도쿄에서 함께 가진 한일 친선패션쇼의 참가는 내 개인에게는 물론 한국 패션계로서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기억할만한 행사였다.
뿐만아니라, 이때의 패션쇼는 디자이너 혼자 북치고 장구치던 시절에서 본격적인 아트 디렉터들이 기획한 전문행사로서 디자이너가 귀한 전문직으로서 대접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쿄의 발표회는 아카사카 프린스호텔에서 열렸으며, 주일 한국 대표부 직원들을 비롯, 각국 외교관 부인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영친왕의 부인인 리 마사코여사와 영식 이구씨 내외가 참석해서 이채를 띠기도 했다.
그러나 보통 한국에서의 패션쇼에서는 사회자들에 의해 디자이너는 물론 모델들의 이름이 몇 번씩 강조되는데 비해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 친선 패션쇼에서는 프로그램에 이름이 나고 쇼 첫머리에 한번 소개되는 정도에 그칠뿐 거의 언급이 없어 당시 서울의 요란스러운 이벤트성 패션쇼에 익숙한 우리네에게 몹시 낯선 컨셉이였다.
일단 디자인료나 모델료를 지불했으니까 거래는 이뤄진 것이고 따라서 쇼에 나오는 의상들은 어디까지나 주최측의 소유라는 철저한 비즈니스 정신이 적용된 것이였다
발표회 석상에서의 의상 해설이 차짓 모델 소개와 혼돈되던 서울에서의 아마추어적 분위기는 물론 찾아 볼 수 없었고 디자인의 특징과 함께 소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특이했다.
또한, 영화배우 출신의 아마추어들은 일본모델에 비해 용모나 체격에 있어 월등 아름다웠지만, 일단 스테이지에 올라가면 워킹이나, 포즈를 전문적으로 수업한 일본의 직업 모델에 비해서 현격히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그때 패션쇼가 한낱 구경거리나 눈요깃 거리가 아닌, 보다 진지한 본래 목적이 충실하려면 출품 의상이 입어낼 패션 전문의 직업 모델이 있어야겠다는 절실한 생각을 갖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