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2천 바늘땀 속에 완성되는 명품의 진수
제주도 출신의 한 젊은이가 양복점이 성업하던 시절, 양복을 배우겠다는 일념 하에 업계에 발을 디딘다. 부산 광복동의 명품 양복점을 다니며 기술을 배운 젊은이는 1981년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국정사를 찾아간다. “저에게 최고의 양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젊은이는 어렵사리 국정사에서 양복을 만들게 되었고, 2대 사장으로부터 결국 국정사를 물려받게 된다. 이 젊은이가 바로 양복 명장 양창선씨다. 양씨의 기술과 국정사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1대 故김필곤 사장도 당시의 양씨를 꼼꼼히 살피면서 그에게 부탁했다 “최고의 양복을 만드는 국정사를 오래도록 지켜달라...”
지난 1948년 부산양복협회 초대 조합장을 지낸 김필곤(作故)씨가 설립한 국정사는 2대 김영곤(82) 사장을 거쳐 3대 현재 사장인 양창선(61)씨에 이르기까지 60년 세월동안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오늘의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3대 사장 양창선씨는 대한민국 양복 명장(2005년)이다. 또한 전국기능대회 금메달을 휩쓴 10여명의 기술자들이 국정사의 인적자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국정사는 장애인들에게 특화된 양복 기술을 전수하고, 지역 대학과 산학협력을 맺기도 하는 등 지역의 양복업계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인 노력과 봉사를 어느 업체보다도 앞장서서 도맡아 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지역 유지들은 물론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입소문을 통해 손님으로 거쳐갔고, 4대째 국정사를 찾는 손님도 여럿 있다.
국정사에서 맞춰 입은 양복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아버지가 다시 아들의 손을 잡고 찾아와 취직을 축하한다며 맞춰주는 곳이 국정사다.
“최근 양복을 맞춘 손님중에 50년째 저희 국정사를 찾고 있는 분이 있어요.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신데, 그분을 볼때 한평생 양복을 만져온 저로선 정말 큰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는 양대표는 그만의 양복을 맞추는 비결이 있다고 한다. 손님의 몸 치수를 잴 때 체형과 근육의 발달 정도를 함께 본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꼼꼼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체형을 만져보고 난 다음에야 제대로 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양대표는 부산 양복맞춤업계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광복동 거리는 한때 맞춤 양복점의 천국이었습니다. 현재는 10여곳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기성복이 밀려왔고 IMF의 힘든 시기도 겪었습니다. 오직 ‘기술’과 ‘장인정신’으로 힘든 시기를 버티게 했습니다.”
현재 국정사는 100년을 꿈꾸고 있다. 유능한 인적자원으로 구성이 되어있고 특히, 양씨의 아들 필석(27)씨가 물리학 공부를 접고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석씨는 복수 전공으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패션 디자인의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삼성아트디자인센터를 졸업하고 현재 와이셔츠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1만 2천 개의 바늘 땀이 들어가야 한 벌의 맞춤 양복이 완성된다. 그래서 맞춤양복은 정성이 들어간 옷, 사람의 손길이 깃든 진정한 품격이 묻어나는 옷이라고 양사장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