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섬유신문 서른살 생일이 가장 감명 깊은 이가 바로 섬유희평을 그리는 정한기 화백이다. 지금까지 2500여 권이 넘는 분량의 만화를 그렸고 오늘도 안경 너머로 펜을 잡는다. 오랜 시간 한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작업방식이 고정될 법도 한데 아직도 2, 3개월에 한 번씩은 새로운 만화체를 테스트해본다는 정 화백의 얘기를 들어봤다.
-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6살 때부터 15년간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곳에서 기본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기서 가르치는 내용 중 일본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 많았어요. 한국사람인 저한테는 와 닿지 않는 내용이 많아 혼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모친이 전시회를 열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있는 분이라서 당시 조각가, 미술가 등 많은 지인들이 어린 저를 볼 때마다 어머니를 본받아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런 부분들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 희평은 어떤 식으로 그리는지.
“희평은 한 컷으로 기사 전체를 표현해야 하니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을 잡아 분석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를 위해 항상 많은 신문을 보고 있지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시나리오 공부를 해온 것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유독 바다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리는 이유는.
“고향이 아닌 외국에서 자라서 그런지 스스로 외톨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게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현해탄 건너 있다 온 사람이라는 잠재의식이 강했습니다. 이런 부분이 그림에 반영되는 것이겠지요.”
- 그 동안 만화를 그리면서 재미있었던 일이 있다면.
“젊었을 때는 한국섬유신문뿐 아니라 동아일보, 한국일보, 대한일보 등 많은 매체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작업량이 많아 문하생을 가르치면서 같이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만화가대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가르쳤던 제자가 본상으로 선정돼서 같이 수상을 했던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얼마 전에는 만화가 모임에 나간 적이 있는데 이름을 밝혔더니 원로면서도 아직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는 그 정한기 화백이 맞냐고 신기해하더군요.”
- 한섬 30년을 맞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회장님 이하 많은 분들이 업계를 위해 지난 30년간 열심히 뛰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패션업계가 다소 침체된 것 같은데 한섬의 힘 있는 기사, 박력 있는 기사로 많은 힘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기사를 보면 희평 그리는 것도 한결 쉬워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섬유·패션업계와 함께 앞으로도 좋은 기사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