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후배들에게 “일등하려고 하지마, 재미없잖아!”
[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손일광’의 거꾸로 가는 시계] 후배들에게 “일등하려고 하지마, 재미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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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인견 패션고부가가치 부여
‘옷을 만든 후 염색’독특한 과정

흉내낼 수없는 디자인영역 구축

지난 봄 이었다.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초 봄의 어느날, 신사동 모 카페에서 손일광 선생은 제자인 선우환 대표, 그리고 선우환 대표를 멘토로 모시고 있는 신진 디자이너 이명제(34), 3대가 자리를 함께 했다.

차 한잔을 앞에 두고 까마득한 후배인 이명제(아뜰리에 ‘러브’ 대표)디자이너가 조언을 구했다. 이명제 디자이너는 프랑스 의상조합학교를 졸업하고 디나르 국제 신인 패션디자이너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으며 현지 패션 브랜드사에서 근무해 온 성실함과 총명함, 겸손함을 갖춘 전도유망한 청년이다. 한국에 들어와 몇 년 째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뿌리를 내리기에 대한민국의 유통현실이나 토양이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비단 이러한 현실은 이명제뿐만이 아니라 많은 신진들의 고민일 것이다.

손일광 선생은 “일등하려고 하지마, 재미없잖아? 대성공? 그런게 어딨어, 없어!”하고 단호하게 직언했다. “앞으로 뭐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나이잖아, 이등이 딱 좋아! 그래서 부단히 노력해야지.”

정형화된 틀에서 외형을 늘리고 죽기 살기로 볼륨화하는 경영으로 소중한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기자는 나름 해석했다. 연재를 하면서 기록했듯이 한국 최초의 남성디자이너 모임의 멤버였던 몇몇은 손일광 선생의 우려속에서 세상을 달리 했기 때문이다.

“패션은 공식이 아니야, 또 의상에만 국한 돼 있는 것이 아니지, 생각이 생활과 같아야 패션이고 예술이야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관념만 있어도 안되지.”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사고를 통해 디자이너로서 패션문화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넉넉한 품을 길러야 하는 것을 우선으로 강조했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지금 어려운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기회는 온다는 것, 그리고 지금 바닥에 와 있으면 치고 올라와 반드시 일등을 할 날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어려울 때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과 정식하고 성실하면 돈은 반드시 벌게 돼있다고 믿어야해요. 내 경험이거든(웃음).”

이명제 디자이너는 ‘옷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며 젊지만 진지한 사고를 갖고 아날로그적이지만 감성이 듬뿍 담긴 아뜰리에(공방)을 착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의 브랜드 ‘러브’는 대량화와 획일화에 지친 고객들에게 힐링(치유)의 사명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점에서 손일광 선생과 이명제 디자이너는 세대를 뛰어넘어 ‘코드가 맞다’고 해야 할까?

전편에 기술했던 ‘하얀사과’의 논리처럼 손일광 선생의 사고력은 녹슬지 않고 젊은 시절 못지않다. 그래서 나이도 세월도 초월해 그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한때 특허에 골몰하고 과학적 종교를 만들려고 오랫동안 두문불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손 선생의 세계는 여느사람들과는 달리 다른 차원에 있다.

“아침에 세수할 때마다 생각하는데 왜 수돗물이 정면에서 나오나? 사실 양 측면에서 물이 나오면 씻기도 편한데”라든가, “겨울에 시청 앞을 지나다 얼지 말라고 짚으로 나무 둥치를 싸든데 스프레이로 뿌리는 보온제가 있으면 좋겠어. 컬러도 색색으로......봄이 돼 비오면 씻겨 가면 더 좋겠고, 자연친화적이잖아?(다음 특허 낼 건이라면서 기자에게 절대 함구를 당부한 내용이다)”며 인터뷰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툭툭 던진다. 다음편에서 기자는 손일광 선생이 짓고 있는 박물관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자 하는데 그의 번뜩이는 재치와 발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손일광 선생은 ‘풍기인견’으로 옷을 디자인하고 있다. 예전에는 인견이 속옷용으로 활용됐지만 풍기 지역의 다각적인 노력으로 고급화된 패션으로 한 단계 발전해 있다. 손일광 선생은 풍기인견으로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하이패션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풍기는 작은 읍인데 인견 옷가게는 50개가 넘는다고 한다.

풍기에서 돈자랑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알부자가 많은 곳이기도 하단다. 인삼과 사과, 인견이 유명한데 한국에서 유일하게 인견 공장이 있는 곳이라며 ‘풍기’에 대해 진지하게 전한다. 아무래도 ‘풍기홍보대사’로 손일광 선생이 제격인듯 싶다. ‘풍기’가 인견의 본고장으로 계속 번영하려면 패션성과 고급화로 승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손일광 선생은 풍기인견으로 옷을 디자인한 후 염색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인견은 생지상태에서 염색하면 수축이 크다. 수축률을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에 옷을 만들어서 염색한다는 것은 위험부담도 크지만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의상별로 각각의 독특함을 가진 고부가가치를 빛내고 있다.

언젠가 ‘포에버 21’에서 협업을 하자고 찾아왔지만 손선생은 거절했다. 엄청난 물량을 해 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옷을 만들어 염색하는 작업은 획일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은 순리를 따라야 하고 과도한 욕심은 화를 불어온다는 것을 손일광 선생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아이템을 대량물량 생산하다보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풍기인견으로 패션의상을 만드는 것에 한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여름’이라는 한 계절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두 개 공장을 계속 가동하면서 한 벌 한 벌에 자존감을 불어 넣고 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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