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고동락 직원 내보내는 심정 아세요”
“8년 동고동락 직원 내보내는 심정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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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자 양산하는 세무조사, 영세 봉제공장 등골 휘어
로렌사의 박유석 사장은 18살에 공장에 들어와 21년째 봉제업에 몸담은 베테랑 공장주다. 그는 기존에 거래하던 두 개의 의류업체가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연이어 세금폭탄을 맞았다. 로렌사에 날아온 납세 고지서는 총 3억 원. 세 번에 걸쳐 분할 납부가 가능하나 첫 1회 60%를 납입해야하고 매달 1.2%의 가산금이 붙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원금에 가산세가 붙어 나중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된다. 6년 전 전세금을 빼 공장에 투자하고 부인과 30만 원짜리 월세방에 살면서 꿈을 키웠던 박유석 사장은 아직도 집 융자 8000만 원의 빚이 남아있다. 결국 그와 아내는 신용불량자가 돼 통장거래, 카드 이용, 대출 등 모든 금융거래가 정지됐다. 박유석 사장은 견디다 못해 봉제 기계들 절반을 내다팔고 올 1월에 11명이었던 직원들을 절반으로 줄였다. 모두 7, 8년 넘게 함께 동고동락한 가족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는 “다들 젊은 나이에 들어와 오랜 시간 함께 했다. 파트마다 전문 기술자가 따로 있어 공장입장에서 타격도 큰데 오죽하면 내보냈겠나”라고 말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 공장은 원래 11명의 인원이 작업할 때 월세, 전기세, 밥값, 인건비를 모두 포함해 월 3800만 원, 부속비용 월 600만 원이 고정 지출되고 있었다. 세금부과처분을 받은 뒤, 작년 비수기 3개월 동안은 지출만 7000만 원이 나갔다. 매년 4월은 백화점의 봄 신상 세일로 본격적인 봉제공장 비수기가 시작돼 앞이 캄캄하다.

박유석 사장은 “건물주들이 사업자등록증 내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부가세 10%를 주겠다고 해도 고개 젓는다. 이 일만 20년 넘게 해왔는데 이제와 다른 걸 할 수도 없다”며 한숨 지었다. 건물주는 사업자 등록을 반대하고, 거래업체는 사업자 등록증 없는 걸로 협박하고, 국세청은 이런 봉제현장의 현실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100% 인건비로 이뤄지는 가내공업 사업자, 부가세 아무것도 몰라
용산 서계동에 위치한 봉제공장인 신성사(사장 지종국)는 한 온라인 쇼핑몰과 거래하다 국세청으로부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총 1억 3000만 원의 세금납입을 통고받았다. 압류가 들어와 모든 작업이 정지됐으며 결국 공장은 폐업했다. 그는 “하청이나 가내공업 형태로 인건비를 받아 살아왔는데 어떻게 우리를 사업자로 보는지 모르겠다”고 체념조로 말했다.

애초에 사업자 등록을 내지 않은 것은 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이것이 봉제공장 업계에서는 관행이라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가내공업형태로 100% 인건비를 받아 작업을 하다보니 머릿 속에 사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사업자 관련법도 전혀 몰랐으며 거래처에서 제공해 준 영수증은 법적효력이 없었다.

또 다른 봉제공장인 현중(사장 유승목)은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총 1200만 원의 세금을 맞았다. 그는 아내와 함께 총 네 명이 일해왔기에 봉제업을 소규모 가족노동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비수기가 길어 6개월 일하고 6개월 놀아 일정하게 수입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사업자라고 생각할 수나 있겠나”라며 “인건비 받으면 60%는 객공이 가져가고 그 외에 공장 운영비, 식비가 고정비용으로 빠져 나가 손에 쥐는 돈은 25%정도 밖에 안된다”고 토로했다.

부가세 덤터기를 씌운 의류업체와 해결해보려고도 노력했지만 오히려 적반하장이었다. 유승목 대표는 국세청의 강제집행으로 사업자를 등록한 뒤 현재 세금도 납입 중이지만 억울한 마음에 다른 구제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 그는 “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다가 상황이 닥치니 당황스럽다. 이런 일이 또 안 벌어진다는 보장 없지 않나”라며 이번 사태가 업계 전반에 알려지길 원했다.

패션업체·봉제공장 ‘철저한 갑을관계’ ‘공중으로 뜬 부가세’에 약자만 당하는 구조
작년 말, 봉제공장에 때 아닌 세금 파도가 휩쓸고 지나갔다. 형제가 각각 운영하는 동대문 청평화시장의 한 의류업체와 온라인 쇼핑몰이 작년 9월 세무조사를 받은 뒤 그 여파가 업체와 거래하는 봉제공장에까지 튄 것이다.

특히 청평화시장의 이 업체는 연 매출 100억 원을 넘나드는 거대업체로 부가세만 30억 넘게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업체와 거래한 봉제공장이 18군데가 넘는데 모두 사업자 등록증이 없는 영세공장들이라는 점이다. 그중 양쪽 두 업체로부터 모두 부가세가 넘어온 공장들은 폐업하거나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봉제공장은 소득세뿐 아니라 받지도 않은 부가세까지 내야하는 판에 억울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봉제공장을 휩쓴 세금폭탄의 원인은 사업자 등록증을 내지 않은 봉제공장, 공장에 부가세를 전가한 의류업체, 이 둘의 구조적 상하관계를 뻔히 알면서도 뒷짐 지고 있는 국세청 모두에게 있다. 법적으로는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공장이라도 업체가 공장 측에 부가세를 주는 것이 옳다. 문제는 ‘공중으로 뜬 부가세’다. 봉제 공장은 의류 업체와 거래 시 제대로 된 영수증으로 거래하지 않아 부가세를 업체로부터 받지 않았다고 증명할 서류가 없다. 뻔뻔한 의류업체는 부가세를 공장 측에 줬다고 계속 발뺌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봉제공장주는 “부가세를 맞았어도 그 의류업체와 거래하지 않으면 일감이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내야할 판”이라며 “간혹 사업자등록증을 내지 않은 공장을 협박하는 의류업체들이 있다. 철저한 갑을 관계에서 봉제공장이 무슨 힘이 있겠나”고 토로했다.

■봉제는 인건비가 전부, 일률적 세금 부과 부당
이번 사태는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봉제공장주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쳤다. 서울봉제산업협회(이하 봉제협) 차경남 회장은 봉제업계에 세법교육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그는 “평소에 회원들 대상으로 출생신고(사업자 등록)를 권장하고 관련 교육을 실시한다”고 말하며 세금을 맞은 비회원 봉제 공장주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관련 전문가 및 공무원들과 접촉하며 대응책을 찾고 있지만 이미 사업자 등록증도 없고 자진신고도 하지 않은 봉제공장주들의 선불법행위가 있었기에 마땅한 구제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법무사 소속 관계자는 “임금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맞다. 100% 인건비로 이뤄지는 봉제공장의 경우 이 부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가능성이 있으나 애초에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지하경제의 세금 탈루자라는 낙인부터 찍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봉제공장을 단순 제조업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봉제공장은 여타 제조업과 달리 물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다. 물품비 없이 순수 인건비로 운영된다. 일률적으로 제조업 사업자로 세금부과처분 하면 현실 무시한 ‘무자비 세법’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세금 납부 대상을 보다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봉제협은 향후 모든 봉제공장주들을 대상으로 세법과 사업자 등록관련 캠페인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일시적 이벤트성 세무조사가 아니라는 판단 아래 최소한 다음에 닥칠 위기는 제대로 알고 방지하자는 뜻에서다.

봉제공장주들도 사업자 등록이 무조건적인 손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연 매출 4800만 원 미만의 간이과세자는 공제세액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알고 대처하면 법 테두리 안에서도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법적효력 있는 세금 계산서와 영수증도 보급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부가세를 업체에서 끊어주지 않았다는 증빙서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장과 거래하는 동대문 가게나 온라인 쇼핑몰의 태도도 개선될 수 있다.

차경남 회장은 “무엇보다 세금을 배제하고 가격 경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차피 낼 세금, 남의 돈이라 생각하는 것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제조업들은 세금을 정해놓고 가격경쟁 붙지만 우리나라 업체들은 누군가가 세금을 내겠지 하고 미루다가 사고가 터진다. 그는 “근본적으로 올바른 가격경쟁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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