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관세정책인가
9년째 상식 밖 관세정책
국민의 사용권리 차단과
기본 산업 몰락 부른다
한국의 섬유산업은 1960년대 삼성· 대우· LG·SK그룹 탄생의 원동력으로서 한국경제를 이끈 주력산업이었으나 아직도 기술집약이 아닌 손재주가 있는 저가 노동시장 활용 산업으로 인식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섬유산업 구조는 면화·양모 등을 수입해 방적과 제직을 하는 천연섬유 사업은 거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으나,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방사·사가공·제직·제편·염색·가공을 하는 화섬산업은 기능성원단 등 기술산업화에 따라 의류·산업자재 쪽으로 유지 발전되고 있다. 화섬산업의 역할은 장치산업인 원사제조 분야와 아이디어와 감각기술의 접목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체들의 운영부분인 제직·제편·염색·가공 분야로 나뉠 수 있다.
최근 8∼9년 간 정부는 화학섬유산업 보호막 설치에 노력해 왔다. 단적인 예가 국내 생산 폴리에스테르 장섬유 연신가공사 보호를 위해 해외저가제품에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해 왔다. 그 결과 나름대로 장치산업을 중심으로 연신가공사를 생산하는 대기업의 보호막 역할은 확실하게 되었으나, 가공수출을 하는 제편·제직·염색·가공의 중소기업은 경쟁력 부재에 직면하면서 베트남·중국 등에 그 역할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2006년 제정·공포된 “중국·대만 말레이시아산 폴리에스테르 장섬유 연신가공사에 대한 덤핑방지관세 부과에 관한 규칙”이나 2013년 12월20일 공포된 것이나 내용상 변동이 없다. 물론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부가상품은 덤핑관세 부과대상에서 제외시키자는 취지는 같다.
그러나 그 세부내용을 보면 가) 정의에서는 누구나 보더라도 맞는 내용을 기술했지만 나) 모델에서는 구체적인 내역을 적용하는 부분에 있어 전문가만이 이해가 가능한, 즉 정부의 행정실무자는 간과할 부분이 되는 일반적인 품종만 명기해 놨다.
예를 들면 균일한 색상을 낼 목적으로 Black 원료로 만든 Black 원착 가연사 75D/36F는 이미 30년 전부터 중소기업 제일화섬에서 제조해 온 특품원사이나 현재 더 섬세한 실을 만들기 위한 기술은 75D/48F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대만은 Black 안료의 미세화(나노화) 기술 발달에 따라 75D/72F까지 제조하는 기술을 확보해 양산하고 있으나 국내 원사제조사 대기업은 이 같은 기술수준에 접근조차 못하는 상태다.
그런데도 법규에는 덤핑관세 부과대상 제외품목은 75D/36F인 것으로 한정시킴으로서, 정작 원자재인 원사를 수입 후 가공생산을 해 그 부가가치를 한국에 남겨야 할 현실은 규제로 묶어 부가가치 활동을 방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중소기업 원사공장의 75D/36F에 대한 덤핑관세를 없앴다는 데 있다.
이는 대기업이 기술개발은 뒷전인 채 수입판매에 눈독을 들이면서 기존 기업의 몰락을 부채질하거나, 다음 단계의 시장개발에까지 고기술 상품에 대한 국내 시장 점유율을 잡기 위한 술책이 숨겨져 있지나 않는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반덤핑관세 원래 취지는 국내 생산되는 제품의 제조원가와 수입가격의 실태를 조사해 덤핑관세를 부과하고, 국내 생산이 되지 않는 고급 기술 품목은 수입을 활성화 시키거나 걸림돌을 제거하자는 제도이나 이 법안은 무엇인가 ‘오타가 났다’고 밖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상식에 맞지 않는다.
정책 하나가 한국 기본산업의 몰락을 부추기면서 자체기술개발보다 방어막으로 국민의 사용 권리를 차단시키고, 생계형 중소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부르며 존속까지 부정한다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많은 모순과 문제의 법안을 봐왔지만 섬유산업에까지 이런 문제가 숨겨져 있다는 데 놀라울 따름이다. 부디 법 규정을 성안하는 과정에서 “이런 모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런 모델만 한한다”라고 잘못 성안했다는 답을 듣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