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이 인정한 소재 세계시장에서도 통한다
창조 개발로 자존심 드높이고 협력업체와 돌파구 마련해야
“지금부터 텍스 씨 엔 제이의 무대는 글로벌 시장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체제에 돌입했어요.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지금까지 해왔듯 차근차근 시장에 접근할 생각입니다. 열심히 우리 제품을 알리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한국시장에서 인정받은 소재라면 분명히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다. 스스로 개발한 소재에 대한 자부심은 이같이 남달랐다. 그 자부심은 이제 세계시장 정조준으로 이어졌다. 주인공은 울 블랜딩 소재 개발의 기수 주호필 (주)텍스 씨 엔 제이 사장(52)이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기자가 찾은 구로 디지털 단지 내 텍스 씨 엔 제이 사무실. 주말인데도 22명에 이르는 전 직원이 자발적으로 출근해, 밀려드는 오더와 잔무처리에 여념이 없었다. 이를 입증하듯 주 사장 책상위에 놓여 진 테이블 캘린더 3월 한 달의 일정은 오전 오후로 나눠 국내 브랜드와 상담스케쥴 일정으로 빼곡히 차있었다. 소위 잘나가는 회사의 사례라 할 만 했다. 240평 규모의 사무실 공간 대부분은 개발 샘플로 가득 차있었다. 샘플 대부분이 울 블랜딩 소재라는 게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1년에 5000개가량 샘플을 개발합니다. 지난 15년 간 개발한 샘플만 7만5000여개에 이르죠. 울 블랜딩 소재 샘플만 놓고 봤을 때 세계 어느 업체도 우리의 개발력에 미치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무실은 세계에서 유일한 울 소재 백화점이라는 자부심도 각별합니다.”
이 날 주 사장은 인터뷰 내내 강한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일관했다. 다름이 아니었다. 그가 지향하는 창조적인 샘플 개발과 맥락을 같이한다. 섬유 엔지니어로서 다져진 그 만의 열정과 장인정신의 실천이었다. 그 실천은 이제 한국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을 향한다.
주 사장은 충남대학교 섬유공학과를 나와 옛 한일그룹 경남모직에서 생산 엔지니어로 울 소재개발과 인연을 맺었다. 1989년도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 울 소재 개발기술 글로벌 톱은 단연 이탈리아 업체들이었다. 당시 경남모직이든 제일모직이든 ‘이탈리아의 울 소재개발 기술을 배우자’는 게 큰 과제였다. 생산 엔지니어로서 상품개발팀에 근무하던 그에게 이 업무가 떨어졌다. 주 사장이 울 소재개발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절호의 기회를 맞는 순간이었다.
“당장 이탈리아 비엘라로 날아갔어요. 이탈리아 기술자 섭외에 나서는 한편 이탈리아 디자이너와 협업까지 진행했습니다. 무려 3년간 소재개발 기술과 상품개발 노하우를 쌓는 큰 기회가 됐어요.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은 큰 힘이 됐습니다.”
그는 경모에 입사한 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장 컨트롤에는 자신 있었다 했다. 방적부터 제직 염색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썰미는 남달랐다. 이 바탕에 선진 이탈리아 울 소재 개발기술과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창조적인 소재개발에 안목을 높이게 했다. 여기에 1년간 일본의 섬유연구소 파견근무가 뒤따랐다. 세세하면서 아기자기한 일본의 상품개발 과정을 몸소 체험하는 기회였다. 섬유 선진국 이탈리아와 일본과의 만남은 그만의 울 블랜딩 소재개발 노하우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비장의 무기로 자리잡아나갔다.
1997년 IMF 위기는 그의 섬유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98년 경남모직을 퇴사하고 서울 소재 모직물업체 (주)코림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환경은 너무나 달랐다. 몸에 밴 개발의 끼를 불사르기엔 답답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는 (주)코림에 몸담은 3년은 개발에 대한 목마름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2002년 그는 직원 2명과 (주)씨 엔 제이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독립에 나섰다. 독립의 명분으로 ‘내가 만들어 내가 판다’를 내세웠다. 폭발 일보직전으로 내몰렸던 개발에 대한 열정은 울 블랜딩 소재개발의 새 역사를 써내려 갈만큼 활활 타올랐다.
“마음가짐의 차이가 되겠지만 섬유만큼 짧은 시간에 기술축적이 가능한 산업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술축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다보니 대부분 쉬운 길로만 가려는 것 같아요. 한국섬유산업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루빨리 이 생각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경쟁력 창출로 연계됩니다.”
그의 개발론은 창조적 개발에서 출발한다. 2030대를 겨냥한 울 블랜딩 소재개발이 주 업무가 되다보니 자연스레 몸에 밴 탓이다. 그는 소재와 패션을 접목하다보면 창조적인 업그레이드 개발로 연계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 카피 개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도 서슴치 않았다. 그는 칼러나 패턴을 바꾸는 것은 개발이 아니다라는 의식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사업시작 동기를 단적인 예로 들었다. 15년 전 한국 브랜드가 선호하다시피 찾았던 이탈리아 산 명품 브랜드 소재 대체에 나섰다. 당시 동일한 울 블랜딩 소재의 한국산 가격은 20달러, 이탈리안 산은 60달러에 달했다. 그는 거품가격이라는 확신과 함께 17달러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나섰다. 바이어가 원하는 대로 응했어도 이윤은 발생했다. 그의 손길로 비롯한 업그레이드 개발은 이제 대체 수준을 넘어 반드시 찾는 소재로 지명도를 높이는 기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로디나(Rodina)사와 디자인 소재개발과 함께 상표까지 같이 사용하는 제휴를 맺었습니다. 또 중국의 푸콘(Pukon)사와 기술개발 제휴를 맺고 생산한 원단을 미국 유럽 동남아 시장은 물론 한국시장에 파는 것까지 협약했습니다. 울 블랜딩 소재개발과 판매에 대한 글로벌 네트웍을 갖춘 것이죠.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공략에 나섰습니다.”
주 사장은 코리아 프리뷰 인 뉴욕, 이탈리아 우니카, 중국 상하이인터텍스타일 주요 섬유소재전 참가를 통해 시장타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주요 컨택 브랜드는 당분간 비밀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글로벌 브랜드를 아우르겠다는 그만의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이는 또 울 블랜딩 소재 새로운 명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다가왔다.
“최근 대부분 글로벌 브랜드가 합리적 가격대를 강하게 추구합니다. 높은 품질을 원하면서도 원단 가격을 낮춰 구매하는 것이죠. 이에 부응할 수 없으면 도태할 뿐입니다. 그만큼 높은 소재개발 기술력이 요구받는 것이죠. 최근 한국의 소재개발 기술력이 떨어지는데 이는 그만큼 산업의 퇴보를 앞당길 뿐입니다.”
그는 “한중FTA가 발효되더라도 소재개발 기술의 뒷받침이 없으면 중국시장 판매는 공염불에 그친다”고 단언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창조적인 개발에 나서자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국내에 다양한 융복합 기능성 기술을 갖춘 협력업체가 많은데 이를 적극 활용하자는 당부였다. 무한경쟁시대의 생존 키워드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소재개발기술이라는 뜻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는 그 힘은 창조적인 개발에서 나온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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