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사람.삶] 우영태 혜양섬유 대표
[만남.사람.삶] 우영태 혜양섬유 대표
  • 한국섬유신문 / .
  • 승인 2005.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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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곬 섬유인 뜻 이어 스웨터수출 외길을 걷다” 국제적 감각으로 혜양 제2 역사 재창조 빠른납기·품질은 기본…개발·연구 최선 오직 스웨터 수출의 외길을 걸으며 평생을 기술과 제품 개발, 후학 양성에 매달렸던 섬유 업계의 큰 별 양문현 회장. 군자(君子) 조이불망(釣而不網). 어진 사람은 낚시를 하되 그물질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난 해 고인이 된 양 회장의 올곧은 삶은 오롯이 우리 섬유 패션인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이러한 뜻을 이어받은 우영태 現 대표는 ‘혜양의 제 2 역사’를 다시 쓴다는 각오로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 창업주 故 양문현 회장의 1주기를 보낸 우영태 대표를 만나 혜양섬유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봤다. 또 우대표가 걸어온 ‘섬유 인생’을 들어보며 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보았다. -대담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출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혜양섬유의 근황은 어떤지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아시다시피 해외 바이어의 요구는 날로 까다로워지고 있습니다. 국내의 대표적인 스웨터 전문 수출 기업은 신원, 서천무역, 혜양섬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스웨터 수출사는 많이 줄어든 편이지요. 주요 수출국은 미국과 유럽으로 이들 대형 바잉사들은 빠른 납기와 품질은 기본 사항이고 자체 개발과 연구, 샘플의 적중률 등을 까다롭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혜양섬유는 국제적 분업화 차원서 생산기지는 중국에 개발기지는 국내에 각각 분리 운영함으로써 효율성 제고, 변화하는 수출환경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또 그동안 1700만 불 외형을 유지해왔던 것과 달리 올해를 기해 2500만 불 규모로 볼륨 확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혜양섬유가 보유한 섬유 기계들은 얼마나 되고 연간 생산 캐파는 어느 정도 입니까. 또 최근 스웨터 바이어들이 관심을 보이는 아이템은 어떤 것입니까. ▲기존 철원공장에 설치되어 있던 편직기들은 일본의 시마세이키, 이탈리아의 스톨과 줌베르카 등 세계적 명성의 최첨단 횡편기, 환편기로 총 70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규모는 연간 200만장을 생산할 수 있는 캐파입니다. 지금은 모든 편직기는 중국 천연 공장에서 진행하는 체제로 전환됐습니다. 한편 제품 개발 및 일부 가공 부분을 위해 분당 공장에 편직기 10대를 가동 중입니다. 분당 공장은 특히 신속한 샘플 작업이 용이하도록 셋팅 돼 있어 혜양섬유의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고 자신합니다. 최근에는 면 스웨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고 20수에서 30수의 면이 선호되고 있습니다. -섬유 수출기업의 성공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좋은(?) 바이어들과 꾸준하게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 합니다. 상호 이익을 목표로 하는 릴레이션쉽은 접대나 친분에 의존하기보다 실력에 대한 인정에서 안착되는 것이지요. 공급사는 끊임없는 자기 개발로 제품을 향상시켜나가고 바이어는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거래 관계의 기본입니다. 그 기본이 바로 노하우이고 성공의 비결입니다. 혜양섬유는 15% 이하의 마진을 요구하는 바이어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것이 양회장님 생전부터 이어져온 철칙입니다. 그만큼 품질에 대해 자신하고 있고 혜양과 거래하는 제이시페니, 포슨뉴욕 등 굵직굵직한 바이어들이 그 자신감과 품질을 인정해 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섬유 수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셨고 해외 지사 근무 등으로 국제적 감각을 익히신 분이라고 정평이 나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나오신 길을 짧게 회고해주세요. ▲67년 삼성에 입사해 스웨터 수출부서에 첫 출근했던 때로부터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저는 원부자재 수급 및 관리업무를 배우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지요. 이후 아동복, 아웃도어웨어, 신사복 등, 96년 에스에스패션 의류본부 소속에서 퇴직하기까지 섬유 패션의 거의 전 품목을 거쳤습니다. 73년에서 77년까지 런던지사 근무 후 귀국, 82년까지 봉제부장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삼성은 故 이병철 회장께서 고부가가치 수출에 매진하라는 지시에 따라 신사복 수출에 돌입 했 던 때입니다. 이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83년까지 동경지점장으로 근무 했고 84년에는 수출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스웨터 수출사업부를 맡았지요. 런던으로 다시 건너 간 것은 구주본부장으로 발령받아 89년부터 91년까지 일하게 되면서입니다. 91년에는 삼성이 수출본부를 정리하는 단계였고 이 후 5년간은 에스에스패션 의류본부에서 일했습니다. 퇴사 후에는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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