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이틀간 열린 2011년 추계 서울패션위크 남성복 컬렉션은 서울 패션 디자이너들의 자존감으로 가득했다. 남성복 컬렉션 첫날 행사장은 패션위크 개막일을 웃도는 열기로 가득했고, 서울 디자이너만의 정체성과 그간의 쌓아올린 아카이브를 표현하려는 강한 의지가 전해졌다. 이미 많은 남성복 디자이너가 파리나 뉴욕, 런던에서 쇼를 행했거나 해외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어, 각 브랜드 컨셉에 트렌드를 가미한 룩을 제안하며 ‘서울 남성복’의 입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중론이다.
‘엠비오’는 한상혁 CD가 총괄 진행한 다섯 시즌의 컬렉션을 총정리, 조각가 최수앙 작가가 작업한 피규어를 쇼장 입구에 설치해 보여줬다. 장광효 디자이너의 ‘카루소’는 포토그래퍼 권영호 작가가 촬영했던 1994년 파리 컬렉션 백 스테이지 사진을 쇼 시작 전에 영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패션쇼 무대에 전원적 풍경이 그려지기도 했는데, ‘비욘드 클로젯’은 정원의 담장을 런웨이 입구에 설치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로리엣’은 프레스코 벽화와 같이 은은한 영상을 무대 후면에 비추고 피날레에는 모델들에게 플로리스트가 작업한 햇을 씌워 패션쇼에 표정을 불어넣었다.
클래식하면서도 캐주얼한 어반 스타일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입기 편한 여유로운 핏이 많았으며, 실용적인 워크웨어에서 착안한 가운과 에이프런, 포켓 디테일도 발견됐다. ‘엠비오’ ‘제너럴아이디어’에서 보여진 네온 컬러, 카무플라주처럼 보였던 ‘비욘드클로젯’의 곤충과 나뭇잎 패턴, ‘레쥬렉션’ ‘카루소’의 레오퍼드 패턴이 남성적이거나 경쾌한 분위기를 더했다.
슈즈는 클래식 스타일에 소소한 디테일의 변형으로 전체적인 스타일링을 거스르지 않거나 유니크한 컬러를 배색해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또한 여러 브랜드에 쉬우드, 카렌 워커, 레이밴 등 여러 선글라스가 매치됐으며, 빅 사이즈의 백팩뿐만 아니라 아니라 스마트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가볍고 얇은 포트폴리오 백과 한층 슬림해진 토트백도 다수 보였다.
‘엠비오(MVIO)’ 한상혁 디자이너는 로브(robe) 컬렉션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무대를 ‘MVIO INSTITUTE OF MEDICINE AND SCIENCE’로 꾸몄다. 클래식의 재해석에 초점을 맞췄던 지난 컬렉션과 비교해 미래적인 컬러와 아이템이 새로운 전환을 보여줬다. 약물이 담긴 듯한 민트빛 시약을 배경으로 색색의 플라스틱 컬러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고유의 록시크 스타일을 보여줬던 ‘레쥬렉션(RESURRECTION BY JUYOUNG)’의 이주영 디자이너는 한층 정제되고 웨어러블한 컬렉션으로 호응을 얻었다. 포멀한 블랙 자켓을 뒤집으면 붉은 색 레오퍼드 프린트가 드러나는 등 리버시블 아이템이 눈길을 끌었고 실용적이면서도 특유의 로큰롤 무드를 잃지 않아 더욱 인상적이었다.
2011 S/S 런던컬렉션 참가를 시작으로 해외 마켓을 본격 공략 중인 ‘디그낙(D.GNAK)’은 네이비, 베이지, 카키와 그레이 등 워크웨어와 같은 편안한 캐주얼과 노마드 감성의 케이프가 매치된 어반 스타일로 완성됐다. 피날레에 강동준 디자이너가 직접 무대에 올라 약혼자에게 청혼하는 퍼포먼스로 관객들과 기쁨을 나눴다.
들판과 해변 등 전원적 감성에서 아웃도어 테이스트를 가미한 디자이너도 많았다. 고태용 디자이너의 ‘비욘드클로젯(BEYOND CLOSET)’은 수목원을 테마로 특유의 경쾌함과 천진함을 보여줬다. 무대 앞쪽에 설치된 정원 벽 너머 모델들이 쓴 스트로 햇이 언뜻 보이면서 호기심을 자아냈다. 베이지와 카키를 베이스로 한 사파리 스타일은 고태용 디자이너의 감수성으로 댄디하게 표현됐다.
프랑스 남부 해변에서 즐겼던 여름 휴가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 최범석 디자이너는 오프닝에 해변이 담긴 흑백 필름을 보여줬다. 이와 달리 컬렉션에 등장한 것은 시릴 만큼 선명한 민트와 오렌지 등 네온 컬러. 아웃도어 점퍼와 니트웨어, 데님과 린넨 등 다양한 소재의 쇼츠들이 눈길을 끌었다.
홍승완 디자이너의 ‘로리엣(ROLIAT)’은 1관 무대 한쪽의 객석을 걷어내고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 뒤, 은은한 전원의 풍경을 비췄다. 내년 봄 클래식 테일러링의 가치를 재현하는데 모티브가 된 것은 잭 브레스퍼드라는 인물. 조정 대회인 헨리 로열 레가타에서 활약해 영국 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1920년대 인물을 캐릭터로 삼아 당시의 전원회귀원망을 컬렉션에 담았다. 캐주얼 테일러링과 레그웨어의 매치로 전원적 아웃도어 스타일을 보여줬다.
파워풀한 동양적 남성성을 섬세한 실루엣의 모던한 복식에 풀어내는 ‘송지오(SONGZIO)’의 송지오 디자이너는 S/S에도 무게감을 잃지 않았다. 블랙과 화이트, 그레이 등 압도적인 컬러로 표현된 린넨 수트, 트렌치 코트가 강렬한 느낌을 전했다. 오렌지 컬러의 니트가 액센트로 보여져 눈길을 끌었다.
남성복 컬렉션 대미를 장식한 ‘카루소(CARUSO)’ 장광효 디자이너는 ‘옷장(armoire)’을 테마로 했다. 1987년 런칭한 ‘카루소’의 헤리티지를 되짚고자 옛 파리 컬렉션의 아날로그 흑백 사진이 무대에 비춰졌고, 장광효 디자이너만의 섬세함과 애수가 느껴지는 컬렉션이 등장했다. 턱시도 변형 디테일과 팬츠의 컬러 블록 등 트렌디한 면모도 보여줬다. 한층 성숙한 분위기 가운데 세일러 칼라나 라임 컬러의 셔츠는 청량한 소년미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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