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섬유산업, 懲毖 교훈 통해 거듭나라
[한섬칼럼] 섬유산업, 懲毖 교훈 통해 거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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懲毖(징비)錄. ‘자신(기업)을 성찰하여 후회를 최소화 한다’는 기록이다. 서애 유성룡이 왜란으로 조선 전역이 유린당하고 초토화된 치욕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성하면서 후세에 전하는 글이다. 왜란은 충분히 예견됐었다. 하지만 리더십 부재와 당파 싸움, 국론분열 등으로 자중지란의 위기로 치달아 뼈아픈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국내섬유산업이 생태계 붕괴와 맞물려 위기에 직면했다. 懲毖(징비)가 어느때 보다 실감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올해도 어느새 5월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전통적인 경기 싸이클로 본다면 최대 성수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리에스터 강연 감량직물과 ITY싱글스판 니트직물만이 4월초 경부터 반짝 물량 증가세를 보여 주었을 뿐이다. 면직물, 화섬복합직물, 나일론 직물 등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대표하는 수출 품목들은 여전히 엄동설한이다. 반짝 물량 증가세를 보였던 폴리에스터 강연 감량직물과 ITY싱글스판 니트직물 역시 이달 중 추세가 꺾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올 봄 성수기가 맥을 못추는 것은 글로벌 시장의 수요 감소와 장기 경기침체, 그리고 국내섬유산업의 생태계 한계성(파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결과로 해석이 가능하다. 대구경북 섬유산업을 비롯 국내 섬유산업이 생태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떠안고 있다.

그러나 지난 호시절 이같은 위기에 대응할 대안 마련에 소홀히 한 탓에 앞날이 막막한 것도 현실이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후발국들은 칼날을 잔뜩 세우고 우리의 섬유영역에 무혈입성하고 있다. 후발국들의 무차별적인 외침(外侵)이 시작된 것이다. 25여년 전, 우리가 일본의 고유 영역이었던 폴리에스터 강연감량직물을 빼앗아 온 전철을 이제 그들이 밟고 있다. 게다가 이탈리아, 독일, 일본, 미국 등 섬유 선진국들은 우리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도망가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섬유산업은 그야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본 품목만 껴 안은채 사면초가에 빠져 버린 형국이 돼버렸다. 이 난국을 뚫고 나가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섬유산업은 국격에 걸맞는 맞춤형 품목 개발과 고부가가치화가 절대적인 과제로 다가왔다.

호시절 위기 대응 소홀히 한 탓에

100g당 가격 1달러도 안되는

정본 품목 껴안은 채 사면초가

섬유생태계 지켜갈 포스트 품목 많다

4~50년 축적 내공 살려 개발 나설 때

우리의 경제력은 이미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 그러나 근로자 평균시급(5000원)은 세계 30위권에 갇혀 있다. 우리의 국격과 경제력에 맞는 시급은 6000~7000원선. 시급에 비례하듯 직물류 평균 단가도 형편없다. 주력 품목군인 폴리에스터 직물과 복합교직물, 니트직물은 각각 kg당 9.09달러, 6.17달러, 4.83달러에 머물러 있다. 100g당 각각 91센트, 61센트, 48센트에 불과하다. 더 이상 우리 국격에 걸맞는 품목이 아니다.

그런데도 생태계 변화에 따른 준비는 게을리 한 채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거나 이들 후발국으로부터 생지(in-grey)를 수입해와 국내에서 염색가공을 거쳐 수출하는 등 연명에 급급하는 모습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 같은 역조 흐름은 급기야 섬유산지를 초토화 시킬 수 있는 요인들이라는 점에서 향후 행보가 여간 우려스러운 게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소득 2만5000달러 시대에 부합하는 소재개발에 나서야 할 때다. 섬유 선진국들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 국격에 걸맞는 품목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슈퍼섬유와 일반섬유를 융복합·교직화한 하이브리드 섬유를 비롯 천연 및 인공섬유를 조합한 멀티플라이 고감성 깅감(gingham)직물, 고기능성 화섬 및 화섬복합직물, 고감성을 구현할 나일론 및 화섬교직물, 핫멜팅 등 차별화된 후가공 기술을 접목한 포스트 품목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우리의 기술과 기반으로 차별화된 섬유소재를 개발할 여지 또한 아직은 건재하다. 한국에서 100g당 2~3달러대 범위를 겨냥한다면 코웃음을 유발할 수도 있을 법 하다. 하지만 4~50년 섬유역사를 통해 쌓아온 내공이 여전히 살아있다.

더 이상 국내섬유산업과 대구경북 섬유산지가 거센 변화 물결의 파고에서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길목을 맞았다. 다행히도 대구산지에서 뜻있는 섬유인들이 자율적으로 모여 생태계를 지켜갈 품목개발에 나설 채비가 한창이다. 아마도 5년쯤 뒤, 오늘을 회상하며 미소짓는 섬유인들이 얼마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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