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서 겪은 힘든 시간 큰 재산
근로환대기업서 겪은 힘든 시간 큰 재산
근로환대기업서 겪은 힘든 시간 큰 재산
동남실업 김홍귀 사장은 군 제대 후 1974년 부터 명동에서 맞춤복 패턴사로 일 했다. 그 당시 명동엔 맞춤옷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가 흔했다. 그만큼 당시에는 맞춤복 시장이 활발했다. 하지만 80년대로 넘어가면서 기성복 시장에 자리를 내주며 맞춤복 시장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만 갔다. 그렇게 패턴사로 일하던 그는 에스콰이어 의류사업부에 취직하게 된다. 당시 에스콰이어는 제화 사업으로 성장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제화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의류로 시장을 확대할 때였다. 김 사장은 패턴사로 10년 넘게 일 했기 때문에 실력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굴러들어온 돌’ 이었고 시기의 대상이었다. 회사 차원에서 시작한 사업이지만 직원들은 ‘신발’ 하던 회사가 ‘옷’을 만들어 팔겠다고 하니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신발 팔아서 돈 벌어 놨더니 옷 만드는 데 쓰냐”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의류사업부가 처음 생겼으니 제대로 된 시스템과 데이터도 없었다. 하지만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끈기로 이겨 나갔다. 프랑스, 이탈리아 의류 샘플을 구해다 연구하고 한국인 체형에 맞게 변화시켜 패턴을 만들고 정형화 된 사이즈도 없어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데이터를 쌓아 나갔다. 김 사장은 “후에 생각 해 보면 정말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은 나에게 변화에 대해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지금까지 사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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