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유난히 갑과 을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인 갑을관계는 사장(甲)과 직원(乙)사이가 아닐까? 하지만 요즘 일부 봉제공장 사이에서는 이런 관계가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상당수의 봉제공장은 만성적인 일감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 요즘 봉제공장 사장들은 일감난 말고도 근심이 한 가지 더 늘었다. 봉제공장 사장들 사이에서 “직원들 관리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기 때문이다.
종로구 창신동에서 30년 가까이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사장은 “요즘은 직원들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하면 기분 나쁘다고 그 날로 바로 그만 두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일을 그만 두게되면 납기를 맞추기 어렵고 그로인한 손해는 사장이 다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지적도 쉽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신고를 하는 것일까?그는 “평소 이것저것 잘 챙겨주며 큰 문제 없이 잘 지내던 직원이 공장을 그만두고 나서 고용노동부에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고 신고를 해서 곤욕을 치르는 곳이 많다. 일반인이 들으면 퇴직금도 주지 않는 악덕업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봉제공장 사장 입장에서 보면 기가막힐 따름이다”고 했다.봉제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매달 급여에 퇴직금을 나눠서 함께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수입이 빠듯하다 보니 한참 후에 받는 목돈 보다 푼돈이라도 지금 당장 받을 수 있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봉제공장 사장들도 이런 사정을 잘 알기에 가능한 직원들이 원하는대로 급여를 지급하고 있는데 일을 그만둔 뒤에 이렇게 신고를 하게되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장이 직원들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고 했던가. 일부 사람들의 문제겠지만 이런 일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커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한국사회를 뒤흔든 갑을관계가 요즘 봉제공장에서는 정반대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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