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월 ㈜BMC친환경산업(이하 BMC)은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사 소속 한류 아이돌 가수의 공연에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물티슈 10만장을 주문받았다. 당시 메르스로 한국 사회가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소속사측은 메르스 예방 차원으로 BMC에 물티슈를 급히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BMC는 주문량에 턱 없이 못미치는, 재고로 갖고 있던 6000장을 납품할 수밖에 없었다. 단 사흘이라는 급한 납기가 가장 큰 문제였지만 한꺼번에 10만장을 생산할 자금 여력이 없었던 것도 원인이었다. BMC는 작년 12월 식약청으로부터 국내 최초로 친환경 항균 의료용 부직포 승인을 받아 기술력에서 단연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한때 매출이 200억원을 넘었지만 지금은 사세가 많이 줄어든 A사는 현재 인견을 소재로 한 언더웨어 개발을 끝마치고 내수 브랜드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기존 제품의 인견 혼용률이 45%안팎이지만 이 회사는 이를 95%까지 끌어올리고 한국아토피협회로부터 아토피 예방 인증까지 받았다. 통상 인견 함유율이 높아지면 염색과 봉제가 더욱 까다로와지는데 A사는 지난 수년간 수억원을 들여 이 같은 기술적 한계를 해결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개발이 끝난 이 아이템은 자금 문제로 아직도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우리 섬유업계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실적 부진에 시달리며 불황 탈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수 침체와 세계적인 경기 불황 등 국내외적인 애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위기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자기 분야에서 기술개발을 거듭하며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유망 기업들은 꾸준히 자라고 있다. 아쉬운 점은 최근에 불어닥친 경기 불황이 제품 인지도와 자금력이 부족한 이들 신생, 또는 기술 의존형 중소기업들에게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인지도·자금력 비교열위 기술기업
불황에 더 취약…업계 지원 절실
정부·기관도 유망 기업 발굴 나설 때
미래 건전한 산업 생태계 육성해야
2020년 섬유 4대 강국의 꿈 가시화
제품 인지도와 자금력이 열세인 이런 중소기업들이 이미 시장에 진출해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보다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미래 한국 섬유산업의 중추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기술형 중소기업의 몰락은 향후 건전한 국내 섬유 생태계 조성에 심각한 위협요인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기술 의존형 기업들은 제품 인지도와 자금력 두가지 측면에서 기존 섬유업체들과 현격한 비교 열위에 놓여 있다. R&D에 치중하다보니 정작 기술 개발이 끝나고 이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쯤이면 회사의 가용 자원이 모두 소진돼 미쳐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진다. 오너의 잘못된 경영 판단이 원인일 수 있지만 이런 기술 의존형 기업들은 주변에서 조금만 조력해 줘도 큰 돈 들이지 않고 스스로 자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차원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기존의 섬유패션 업체들은 제품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상품만을 선호한다. 검증된 상품이란 곧 시장에서 누구나 같은 가격에 받아 같은 원가 구조를 지닌 평범한 소재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러니 매번 품질은 미국이나 일본에 치이고 가격은 중국이나 동남아에 밀린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 뿌리내린 기존 업체들이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중소기업과 손잡고 코웍을 할 수 있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수년 내, 또는 우리가 세계 섬유 4대 강국을 꿈꾸는 2020년에는 중간 허리가 탄탄한 선진국형 섬유산업 생태계 조성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금력에 있어서는 정부와 산업 정책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관련 단체들의 조력이 큰 힘이 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형 중소기업들이 정부 정책 자금의 수혜를 받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연 1000억원이 넘는 섬유패션 R&D 자금은 이미 시장을 지배하는 유력 업체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매년 섬유의 날이 다가올 때면 심사위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심한다는 얘기도 수년 전부터 회자되고 있다. 이미 받을 만한 곳은 다 받았기 때문에 단계별 포상 품격에 맞는 업체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후문이다.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기관들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기술형 중소기업 발굴에 더 세심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년 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일이 닥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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