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칼럼] 제 29회 섬유의 날, 모진세월 견뎌낸 수상자에 갈채를
[한섬칼럼] 제 29회 섬유의 날, 모진세월 견뎌낸 수상자에 갈채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눈빛이 맑다.
나이에 비해 세월을 비켜간 듯한 아름다운 외모와 유쾌하고 지적인 말투, 그리고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일본어와 영어, 글로벌 스텐다드한 매너의 소유자. 바로 한국패션의 역사이자 산증인 노라노 디자이너이다. 얼마전 패션계에서는 최초로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해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노라노 디자이너의 손은 마치 발레리나의 굳고 휘어진 발과 같다.
“패턴을 모르면 디자이너가 아니다”라고 단언하는 노라노 디자이너는 처음 시작할때부터 지금까지 매일매일 패턴을 직접 제작한다. 가위질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노동자의 손처럼 굽고 휘어졌으며 그것을 소중한 훈장처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훈장의 수훈은 큰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화려한 직업이라기 보다 ‘기술’이 접목돼야만 보이는 것과 착장감을 동시에 실현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국에서는 디자이너보다 패턴제작이나 기술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장인들이 더 대우받는 분위기임을 늘 강조한다. 그러니 화려한 이면에 예술가같은 감성과 노동자 근성을 함께 가져야 훌륭한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노라노 디자이너는 한국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유학을 가 의상디자인을 공부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할 것을 알면서도 귀국해 가족들과 부산으로 피난을 갔으며 거기서도 옷을 지었다. 유학시절 배운 영어로 미군부대에 가서 페니실린 등 의약품을 구해와 병자들의 수술을 돕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 명동에서 의상실을 하고 또한 고급기성복 시대를 여는 선구자역할을 했다. 미국에 머무르면서 현지여성들의 사이즈를 연구해 뉴욕의 유명한 백화점에 진출하는데 성공했고 당시 쇼윈도 전체를 도배할 만큼 노라노의 위력은 대단했다. 전쟁발발 이후 코리아 라는 작은 나라는 몰라도 노라노는 알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의 실크로 드레스를 만들어 세계를 제패한 사례이며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노라노의 카피와 도용이 빈번할 만큼 유명세를 탔다. 이후 50세가 넘어 일본시장을 공략, 끊임없는 의지와 도전으로 디자이너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격동의 세월, 패션시장 개척한 노라노
손가락 마디마디 가위질로 휘어져
그 어떤 훈장못지 않은 삶의 계급장
“옛 성과에 연연해 새 물결 놓쳐선 안돼”
“시대변화 발맞춰 신사고 가져라” 충고


아직까지 하루 두 번씩 패턴을 직접 그리는 노장의 노라노 디자이너는 쟁쟁한 현역임을 자부한다. 요즘은 미국시장을 겨냥해 아름다운 드레스를 디자인하고 수출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산업의 부흥기에 전 생애를 패션에 걸어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디자이너의 대명사로 현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해마다 섬유의 날, 무역의 날 등 때가 되면 국가나 산업계에 이바지한 공로자들이 속속 수상자로 선정된다. 매년 숨은 공로자들이 등장한다. 수상자들의 공적서를 보면서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자수성가를 하고 산업발전에 분명히 혁혁한 공을 세웠음을 인정하게 된다.몇 줄의 공적서로 모든 것을 다 알수는 없겠지만 허허벌판에 나무 한그루씩을 심듯 차근차근 평생을 사업체를 일궜다. 때로는 이 모든 수고들이 허물어지는 좌절감도 맛 보았을 것이며 다시금 우뚝 일어섰을 과정들이 읽혀진다.노라노 디자이너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남아’ 성장한 섬유, 패션기업인들과 종사자 모두의 인생이 결국은 이처럼 ‘드라마틱’ 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매년 수상자들을 발굴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그동안 타 첨단산업분야에 비교해 섬유, 패션산업계의 어려움이 지속됐고 신생기업들이 탄생하기엔 힘겨운 환경이라는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1세대와 1.5세대의 경영자들이 자신의 경험이 곧 법칙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보다 큰 시야를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시대적 상황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다음세대의 섬유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 시대 변화를 감지하고 과거의 성과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열정’과 ‘사명의식’이지만 다음세대를 위해 아집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 노라노 ‘선배’의 충고이다. 제 29회 섬유의 날, 그 누구못지않은 드라마틱한 세월을 극복해 온 모든 수상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한국섬유신문
  • 창간 : 1981-7-22 (주간)
  • 제호 : 한국섬유신문 /한국섬유신문i
  • 등록번호 : 서울 아03997
  • 등록일 : 2016-11-20
  • 발행일 : 2016-11-20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 234 (밀스튜디오빌딩 4층)
  • 대표전화 : 02-326-3600
  • 팩스 : 02-326-2270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종석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김선희 02-0326-3600 [email protected]
  • 한국섬유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한국섬유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