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가 롯데홈쇼핑에 내린 ‘프라임타임 6개월 업무정지’ 행정처분이 중소협력업체가 떠 안는 꼴이 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번 결정은 20년 홈쇼핑 역사상 초유의 사태다. 특히 이번 업무정지 처분은 협력업체에 직접적인 피해를 야기하는 반면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발단은 작년 롯데홈쇼핑이 미래부의 홈쇼핑 재승인 심사과정에서 배임수재 등 혐의가 있는 임직원을 누락하면서부터다. 감사원은 롯데홈쇼핑이 사업계획서를 사실과 다르게 작성된다고 보고 방송법 제18조 등의 규정에 따른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래부가 우리홈쇼핑(이하 롯데홈쇼핑)에 대해 4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걸쳐 9월 29일부터 6개월간 업무정지 처분을 내린 것. 업무정지는 하루 6시간(오전 8~11시와 오후 8~11시) 으로 황금시간대다. 롯데홈쇼핑은 업무정지 기간의 매출 취급액이 작년대비 5500억원으로 예상한다. 이중 롯데홈쇼핑이 갖는 평균수수료 35%를 뺀 3575억원이 협력업체의 피해액이다. 이로 인해 173개 롯데홈쇼핑 단독거래 중소기업을 비롯해 338개 업체가 중간에서 초비상사태를 맞고 있다.
롯데홈쇼핑과 협력사들은 지난 5월30일~6월1일 3일에 걸쳐 비상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협력사들은 단독 브랜드 PB상품의 경우 다른 유통채널로 이동이 불가능하다. 2016FW 상품의 1~2분기 원자재 구입과 생산은 이미 진행됐다. 특히 FW 상품 판매와 내년 봄 시즌 준비가 계속 연결돼 상품 준비에 차질이 예상된다. 이날 비상대책회의는 강현구 대표이사의 사과발표를 시작으로 향후 대응방안에 대한 설명, 협력업체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롯데홈쇼핑 단독 패션 브랜드 ‘샹티’를 직수입해 판매하고 있는 인티지아 김선미 대표는 “의류는 1년 전부터 제품을 기획하기 때문에 독일에서 이미 7~9억원의 원자재를 수입해 FW 상품 제작에 들어간 상황이다. 9월28일부터 6개월간 황금시간대 방송이 중단되면 70~80억원 어치의 물건 팔 곳을 잃어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가죽과 퍼 의류를 생산하고 있는 시티지 최태진 대표는 “롯데홈쇼핑이 받아야 할 벌이 중소업체로 튀었다. 협력업체에 대한 아무런 대안 없이 업무정지를 내린 미래부에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유통을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다. 이미 150억원 물량을 생산했거나 생산중이다. 우리만 해도 하청업체가 20여곳이 넘는다. 이번 사태로 인해 성장동력이 없어져 버티는 것조차 힘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시티지는 FW 가죽와 퍼 의류를 95% 이상 국내 생산한다. 롯데홈쇼핑에서 85% 매출을 올리고 있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롯데홈쇼핑은 향후 업무정지에 대한 법적 대응보다는 협력업체 자금지원과 대책방안 수립이 먼저다.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영업정지 유예를 끌어내는 등의 행정소송은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선 협력업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부는 지난 5월30일 10여개 주요 홈쇼핑 회원사와 한국TV홈쇼핑 협회, 한국홈쇼핑상품공급자협회 등과 함께 협력사 지원방안 논의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롯데홈쇼핑’은 중소협력사 판로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지원 TF팀을 구성하는 등 구체적인 방안마련에 나섰다. 이날 주요 홈쇼핑 대표들은 홈쇼핑 중소협력사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업계차원에서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GS홈쇼핑 허태수 대표는 “각 홈쇼핑사와 거래중인 중소협력사에 대한 역차별 우려가 있다. 롯데홈쇼핑 협력업체 지원으로 인해 기존업체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유연수 유리미디어 대표
롯데홈쇼핑 PB상품 생산업체 큰 타격
성수동 제화 등 패션섬유업체 피해 눈덩이
유리미디어는 여성구두를 생산해 홈쇼핑에서 유통한다. 롯데홈쇼핑 판매 비중이 85%에 이른다. 연간 250억원 매출을 올리는 중소업체다. 제품은 100% 국내 생산을 한다. 지난 1일 유연수 대표를 만나 롯데홈쇼핑이 받은 업무정지 처분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지난 5월30일 협력업체와 롯데홈쇼핑이 긴급 비상 회의를 가졌다. 주요 내용은 무엇이었나.
“롯데홈쇼핑이 홈쇼핑 재승인 심사과정에서 임직원을 누락한 이유는 그 당시 재판중이었기 때문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해 제출하지 않았다. 이후 롯데홈쇼핑은 2차 서류를 낼 때 감사원에서 빠졌다고 말한 두명의 인원까지 포함해 제출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협력업체로 구성된 기구를 만들자는 의견이 많았다. 아직까지는 실효성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가장 크게 타격은 무엇인가.
“각 홈쇼핑사에는 자체 PB가 있다. 롯데홈쇼핑이 국내 상표권을 가지고 있고 협력업체를 통해 생산한 PB 비중이 매우 높다. 특히 자본력이나 생산능력이 제한되는 영세업체와 롯데홈쇼핑에 독점 유통하는 업체가 타격이 크다. 불똥이 협력 업체에 튀었다.
대부분의 패션업체는 가죽 원자재나 고가 부자재는 여름에 많이 산다. 겨울 상품은 6개월 전에 시즌 기획과 생산에 들어간다. 우리는 이미 20억원의 물량이 생산됐다. 사실 4개월의 유예기간도 부족하다. 특히 방송정지가 시작되는 9월은 상품 판매시점이라 업체들 피해가 더 많다.
홈쇼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고 내려진 조치라 아쉽다. 미래부의 탁상행정이다. 이런 조치를 내리기 전에 협력사 의견을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나올 수 없는 일이다. 유리미디어는 프라임 타임 시간인 오전 8~11시 사이에 여성구두를 판매해 1회 평균 9억 정도 매출을 올린다. 이전에는 한달에 4~5시간 방송했는데 앞으로는 최대로 잡아도 2시간도 못하게 될 것이다. 손실액이 엄청나다.”
▲롯데홈쇼핑 업무정지로 협력사에 미치는 영향은. 가장 큰 문제점은.
“당장 겨울 상품 생산을 줄이거나 멈춰야 한다. 유리미디어는 연간 40만족을 국내서 생산한다. 우리가 하청을 주는 부자재 등 협력업체가 30여군데가 넘고 딸린 식구만 300여명이다. 20만족 생산을 못하며 수제화 공장이 밀집한 서울 성수동이나 부산 공장까지 피해가 미친다. 다른 홈쇼핑채널에서 1~2시간 방송시간을 따낸다고 해도 업체들은 최소한 상품박스를 바꿔야하는 추가적인 비용이 또 들게 된다. 대부분 롯데홈쇼핑 고객 타겟층에 맞는 상품이 준비돼 있다. 홈쇼핑업체마다 고객 타겟층이 다르다는 얘기다. 비슷한 수준으로 매출이 유지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아울렛 등에 유통을 확대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홈쇼핑 브랜드는 하나의 디자인에 1만개가 넘는 상품이 많다. 소품종 대량생산이다. 그러나 아울렛에 유통되는 상품은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유통을 모르면서 나오는 대책이 많다.“
▲미래부가 다른 홈쇼핑 업체와 데이터 홈쇼핑사 등에 업체 판로 지원을 요구했다. 실효성이 있나.
CJ, GS홈쇼핑 등 다른 곳에는 이미 협력업체가 많다. 기존에 각 홈쇼핑사와 거래중인 중소협력사 등의 역차별 우려가 있어 극소수 업체만 방송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의 지속성면에서도 우려된다. 6개월 남의집살이를 하다가 롯데홈쇼핑에 다시 방송을 하게 되면 양쪽 업체 눈치를 다 봐야한다. 미래부는 대기업 상품 편성을 막거나, 중소업체 수수료를 깍아주는 등의 다른 처분이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