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미국에서 설립된 ‘이발브드 바이 네이처(Evolved By Nature)’는 누에고치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제거하고 순수 단백질만 추출한 ‘액티베이티드 실크(Activated Silk™)’를 개발했다.
누에고치는 세리신(Sericin)과 피브로인(Fibroin)이라는 두 가지 단백질로 이루어졌는데 이중 일부 사람에게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세리신을 제거하고 순수 단백질인 피브로인만 액상으로 추출하는 기술이다. 피브로인은 누에고치 단백질의 80%를 차지한다.
이발브드는 이 같은 친환경 녹색기술로 글로벌 명품기업 샤넬로부터 지분 투자를 유치했다. 이발브드는 지난 11일 “샤넬이 친환경 기술에 투자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우리 회사에) 투자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공동설립자겸 CEO인 그레고리 알트만은 “액티베이티드 실크 화학 플랫폼의 상용화를 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샤넬의 지원을 받아 패션 및 미용 분야 전문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발브드는 ‘액티베이티드 실크’가 섬유(fabric), 퍼스널 케어(Personal care), 의료(medical) 분야에서 기존 화학성분을 대체하는 물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패션상품에서 치약, 샴푸, 베이비 로션 등 사람 피부에 닿는 광범위한 제품에 쓰일 수 있다.
회사측은 섬유 원단에 적용할 경우 빠른 건조와 흡습성, 색상 내구도가 향상되는 것으로 밝혔다. 뿐만 아니라 수축 및 필링(pilling)과 원형 복구(stretch & recovery)에 강한 물성을 부여할 수 있다. 부드러운 촉감을 살린 잠옷, 구김 없는(wrinkle-free) 바지, 보풀(pilling)을 줄인 스웨터 등 후가공에서 사용되는 유해 화학물질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에고치에서 피브로인을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한 곳은 이발브드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발브드는 추출한 피브로인을 액화시키고 안정시키는 데까지 나아간 최초의 기업이다.
생산 과정은 이렇다. 이발브드는 다른 용도로 이미 사용된 폐 누에고치를 뜨거운 소금물로 씻는다. 이 과정에서 끈적끈적한 바깥쪽 세리신 층을 제거하고 순수 피브로인만 남긴다. 여기에 다시 소금과 물을 투입해 피브로인을 용해시켜 섬유에서 액체로 바꾼다. 이 과정에서 스며든 소금은 이발브드가 보유한 독보적 기술의 정제과정을 통해 제거된다.
그 결과 수백가지의 분자구조를 가진 순수 실크 단백질 베이스가 만들어진다. 소위 ‘활성 실크(activated silk)’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단백질 베이스는 기존 유해한 화학물질을 대체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며 인체에 해롭지 않은 다양한 제품에 쓸 수 있다.
이발브드는 “액티베이티드 실크 기술로 피브로인 단백질이 가진 잠재력을 해방했다”며 “견고하고 가벼우며 고급스러운 동시에 실크가 이전에는 꿈꾸어 본 적 없는 속성을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발브드는 향후 개인 위생용품 제조에서 사용되는 유해화학 물질을 대체할 수 있는 상품으로 육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샤넬이 지속가능 친환경 경영에 한발짝 더 다가선 것으로 보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는 “샤넬이 녹색(green) 화학기업 투자를 통해 친환경 제품에 대한 대중 관심을 이끌어내는 거물이 됐다”고 평가했다. 또 언젠가는 이 물질을 사용한 475달러짜리 스카프가 출시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샤넬은 작년 말 핀란드의 생분해성 플라스틱 포장재 회사인 설라팩(Sulapac)에도 투자한 바 있다. 이에 앞선 2016년에는 프랑스의 최고급 실크회사 4곳을 인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