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판매자)가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판매한 고샤 루브친스키 자켓은 플랫폼 어플릭시를 거쳐 플랫폼과 파트너십을 맺은 런드리고 세탁소에 도착했다. 전문가 손을 거쳐 말끔해진 옷은 재활용 소재로 만든 런드리고 옷걸이에 입혀진 채로 팝업스토어 행거에 걸린다.
백화점에 놀러왔던 손님들은 새 옷만큼 깔끔하고 가격은 저렴한 중고옷을 보고 놀라면서 자신의 옷도 팔 수 있는지 묻는다. 지난 8월 31일 갤러리아 백화점 팝업스토어를 마무리한 어플릭시는 16일동안 약 1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
패션에 최적화된 중고거래 플랫폼 시장이 국내에도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다. 소비자들은 일상적인 중고제품을 거래하는 중고나라나 당근마켓에서 전문플랫폼으로 이동했다. 한국패션 중고거래 시장은 MZ세대가 고급 상품을 적극적으로 거래하면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이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는 한국 경제 급속성장에 따른 ‘거래창구 부족’이 꼽힌다. 한국 경제는 지난 50년동안 빠르게 성장했고 그 결과, 지금 한국에는 고급 패션상품을 중고거래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50대와 중고품을 사려는 1020세대가 공존한다.
어플릭시 구동현 대표는 “고급 상품이 중고시장에 풀리려면 그 나라가 잘 살아야 하고, 잘사는 사람들이 옷장에서 옷을 꺼내 시장에 내놔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중고시장에 풀릴만한 고급상품이 적었다면, 이제는 부유한 3040세대가 상품을 팔 창구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이유는 한국 내 ‘중고거래가 낯선 문화’로 꼽힌다. 브이룩 플랫폼을 만든 김지영 대표는 시장조사를 해보니 미국과 일본은 할머니 옷장에서 꺼낸 옷을 자연스럽게 입는 빈티지 문화가 자연스럽지만 한국은 지금 MZ세대를 만나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인스타그램 광고를 시작할 때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을 타겟팅했는데, 실제로는 타겟팅한 적도 없는 13-17세 인스타그램 유저가 브이룩 게시물을 본다”고 말했다.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이 일반 중고거래 사이트와 구별되는 점은 사기거래가 적다는 점이다. 한국 패션 중고거래시장에는 유독 옷을 아끼는 사람들이 자정작용으로 가품을 걸러내는 독특한 문화가 정착했다.
주로 디자이너 브랜드 상품이 거래되는 플랫폼 후루츠 패밀리를 운영하는 이재범 대표는 “직원뿐 아니라 이용자들이 직접 가품이나 의심되는 게시물, 전문업자를 신고한다”며 “아직 후루츠패밀리에서는 접수된 사기 거래 신고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플랫폼에게는 앞으로 매니아층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까지 중고거래 시장에서 편하게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숙제가 남아있다. 브이룩 김지영 대표는 “쇼핑사이트에서 옷을 사듯 중고상품을 살 수 있게 업데이트 중”이라며 “콘텐츠를 쌓아 친숙함을 늘리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해, 영상을 촬영해 업로드하고 있다.
브이룩 내 중고상품으로 꾸민 유튜브 쇼츠 룩북영상은 조회수 198만회를 달성하면서 홈페이지 유입률을 높이는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패션 중고거래가 일상적인 미국의 경우, 중고거래 플랫폼 스레드업(ThredUp)이 발표한 2021 리세일 보고서에 따르면 패션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올해 360억 달러(약 41조 6400억원)에 달한다.
디팝(Depop)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Vestiaire Collective), 더리얼리얼(The RealReal), 포쉬마크(Poshmark)등 특색있는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이 공존하고, 이 중 포쉬마크는 지난해 2억 6210만 달러(약3032억원) 매출을 기록하고 올해 1월 상장했다.
국내 전체 중고거래 시장규모는 20조원으로 추정되며, 그 중 패션이 약 30%를 차지하는 가장 큰 카테고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후루츠 패밀리 이재범 대표는 시장이 커지면 점차 이용자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신뢰는 한 번이라도 잃으면 회복하기 힘들다. 신뢰는 유지하되 이용자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자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