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크게 수초지(手秒紙)와 기계지(機械紙)로 나눈다고 한다.
이때, 수초지는 손으로 만든 종이를 말하는 것으로, 한지(韓紙)는 중국의 화지(華紙), 일본의 화지(和紙)와 대비되는 우리나라 수초지를 일컫는 말이다.
기계지는 수초지와 제조과정은 같으나 원료처리 과정에서 화학약품을 사용하고, 손으로 뜨는 과정을 기계로 대체해 대량 생산 하도록 한 것이다.
종이는 일반에 알려진 대로 중국에서 기원전 2세기경에 발명되어, 105년에 이르러 채륜(蔡倫)이 제조법을 개량한 후 널리 전파된 이래 인류의 문명을 크게 바꾸어 놓은 주인공.
그 종이를 활용한 의류가 발전된 곳이 바로 일본.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996년 紙衣, 1033년 紙布의상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55년에는 종이 옷 제작기술을 무형 문화재로 지정했을 만큼,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깊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한지의 역사는 깊다.
특히, 전라북도 전주는 조선시대의 가장 품질이 좋은 한지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배경으로 더욱 주목을 모으고 있는데, 천년 이상 보관을 할 수 있다는 전주 한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편에 전라도에서 생산된 종이의 종류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당시 전라도에서는 20여 종류의 한지가 생산되었는데, “동국여지승람(1481년)”에는 전주를 상품지의 산지라고 하였고 “여지도서(18세기)”와 “대동지지(1864)”에는 전주 한지가 최상품임을 기록하고 있다.
개화기 시대에는 전주 지역에서는 농선지, 태지(전주특산품), 화선지(전주특산품), 계입장자지(전주특파원), 호적지, 박엽지, 운용지, 공물지, 당선지, 진흥지, 형지, 진황지, 표구용지, 우산지, 전구지, 미농지, 봉서지, 편찬지, 피지, 등사원지, 장판지, 여과지, 마포지, 노설지와 이밖에 각종 색지가 생산되었으며, 당시 전주시의 한지 생산량은 전국 수요량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러한 한지 생산은 19세기에는 전주의 풍남동을 중심으로 생산이 되었다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 전주시 서학동 흑석골로 자리를 옮긴다.
현재는 흑석골에 한 곳이 남아있고, 대부분 팔복동 공업단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조형성의 의미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손을 대고 있지만, 그 재료는 극히 한정되어, 티슈지 작업에 그칠 정도.
게다가 한지는 공예적인 차원에서는 발전되어 있으나 의류 분야에서의 원료는 닥(Paper Mulberry)이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의 그것은 화선지용 개발으로 發墨(묵이 번지는) 현상이 일어나 의류에 적용하기는 치명적인 단점이 많다.
그러나 질기고 강한 한국 닥의 경우 의류를 만들기에 훨씬 적합하고, 오는 2004년 IAPMA(Int’l Association Paper marker & paper Artist)행사를 전주가 유치하게 되는 것을 계기로 한지가 새삼스럽게 전세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상업적인 면에서 한지는 흙에 잘 썩고 화장시 속도를 줄이고, 잔재가 남지 않는다는 환경 친화적 의미로서, 수의(壽衣)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한지로 직접 皮를 짜서 布를 만드는 紙布용 기법은 직조기에서의 교직방법에 따라서 상당히 실용적인 옷으로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한지는 염색성이 강하기 때문에 가벼우며 착용감도 좋은 한지는 환경친화적 소재로서 새로운 패션감각만 가미되면, 리사이클 웨어로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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