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소규모 봉제 공장에서 나오는 자투리 원단 조각 재활용 시범 사업을 시행한지 2달, 그동안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본지는 최근 섬유 제품 쓰레기 수거 및 재활용이 이뤄지는 현장을 확인한 결과, 각 구청 및 봉제 공장들의 협조속에 쓰레기 재활용율이 4배 가까이 올라가고 공장들은 월 수십 만 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긍정적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구청은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과태료를 무기로 봉제공장 업주들에게 위압감을 조성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구태 행정이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섬유제품 쓰레기 재활용률 3.6배 증가
쓰레기 봉투값 월 수십만 원 절약
봉제 공장이 밀집한 종로구 창신동 일대. 이전에 이곳에서 수거된 섬유제품 쓰레기 양은 ‘제로(O)’였다. 전량 일반 쓰레기로 수거되거나 일명 ‘개미’로 불리는 무허가 개인 업자들이 수거해 갔기 때문에 통계상에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
대부분 매립지로 가거나 불법 소각 또는 폐기를 거치므로 재활용률도 제로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시범사업 이후 이 곳에서 지난 2월 한달간 분리 과정을 거쳐 수거된 섬유제품 쓰레기는 약 44톤. 이중 약 25%인 11톤이 새로운 섬유 제품으로, 제품 쓰레기 외 잔존물 70%는 소각 업체로 넘어가 열 에너지로 재활용 됐다.
보온 패딩솜이나 가죽류, 부자재 등 지정 폐기물 업체로 넘어간 쓰레기는 5%에 불과했다. 섬유제품 쓰레기의 95%가 제품 또는 열 에너지로 재생된 것이다.
성북구와 계약해 연간 3000톤의 섬유제품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있는 리텍스에 따르면 시범사업 이전에는 섬유제품 쓰레기 재활용률은 7%에 불과했다. 봉제공장들이 일반 쓰레기와 분리해 배출한 결과 재활용률은 18% 포인트, 무려 4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그동안 무허가 개인 업자들이 무단 수거해 불법 매립돼 오던 쓰레기들이 자투리 원단 조각 재활용 사업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수익원이 된 것이다. 업계는 섬유제품 쓰레기 분리 수거가 더욱 정확하게 이뤄지면 현재 25%인 재활용률이 40~50%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월 평균 수십만원씩 부담하던 쓰레기 봉투값 비용도 약 60% 가까이 절감되고 있다. 100리터 기준 1800~2300원(구청마다 다름)하는 종량제 쓰레기 봉투 대신 가격은 약 절반이지만 용량은 1.5배인 재활용 마대(봉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규모가 작은 곳은 100만원에서 큰 곳은 200~300만 원까지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
■종로구청
“섬유제품 쓰레기 재활용하면 과태료 물리겠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일부 구청은 시범사업 출범 이후 이를 독려하기는커녕, 서울시 협조 아래 이뤄지는 합법적인 섬유 제품 재활용 사업에 대해 전례 없는 단속을 실시하고 봉제공장 업주들에게 위압감을 조성하는 등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창신동에서 여성 의류를 생산하는 모 봉제공장 사장은 지난 15일 종로구청 청소행정과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종로구와 중구, 동대문구는 서울시와 재활용 시범사업 협의가 되지 않았으므로 (섬유제품 재활용) 마대에 넣어서 버리면 불법이다. 앞으로 또 적발되면 과태료 100만원을 물리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이 공장은 시범사업 이후 서울시 마크가 찍힌 분리 수거용 마대에 담아 섬유 제품 쓰레기를 내 놓고 있었다. 하루 평균 100리터 종량제 봉투를 7~8개를 쓰고 있어 한달 봉투값만 평균 30만 원 넘게 들었다. 재활용 마대를 사용하면 이 돈이 10만 원대로 내려간다.
공장 사장은 “봉투값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섬유 제품 쓰레기 재활용은 우리 업계에 이롭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얘긴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공장은 종로구청 경고를 받고난 뒤 지난 18일부터 그동안 쓰던 재활용 마대 대신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다시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또다른 봉제공장 업주는 “쓰레기 수거업체 직원이 찾아와서 재활용 쓰레기를 마대에 담아 내 놓을 경우 이를 구청에 신고해서 벌금을 물리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명함을 보니 이 곳은 종로구 쓰레기의 2/3를 수거하고 있는 모 환경대행업체였다. 이 공장 사장은 “재활용 업체가 가져가라고 따로 모아 내 둔 건데 이게 왜 쓰레기냐”며 “사진을 찍으려고 해 막았다”고 말했다.
말로는 제품 쓰레기지만 아직 버리지 않은 이상, 엄밀히 말하면 물건의 소유권은 공장주에게 있다는 얘기다. 이는 서울시와 환경부에서도 합법이라고 인정한 부분이다. 서울시에서 관계법령 검토후 시범사업으로 지정한 재활용 사업을 종로구청에서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지경부
“관계 법령 개정 위한 실태 조사”
이 같은 행정 난맥은 작년 11월 서울시가 환경부에 요청한 ‘쓰레기 종량제 수수료 지침 개정’과 ‘재활용 가능 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 개정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쓰레기 종량제…지침 개정’은 원단조각 재활용을 위해 종량제 봉투 대신 재활용업자 전용 봉투를 쓸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또 ‘재활용 가능…지침’은 재활용 가능 자원에 섬유류(옷)만 지정돼 있으므로 여기에 원단조각이라는 문구를 추가해 달라는 내용이다.
당시 환경부는 원단 조각에 대한 분류가 명확하지 않고 현재 법령만으로도 충분히 재활용 사업을 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21일에는 지식경제부 박원주 산업정책관(국장) 및 최연우 산업환경 과장, 서울시 자원순환과 최인섭 주무관 등 정부, 지자체와 서울봉제산업협회 관계자 등이 모인 가운데 섬유 제품 쓰레기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대책 회의가 열렸다.
이날 서울봉제산업협회 차경남 회장은 “일부 지자체에서 봉제섬유 재활용에 있어 환경부의 재활용에 관한 명확한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용역업체를 동원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업과 단체가 순환 재활용시 환경부, 서울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며 조속한 해결을 건의했다.
지경부 박원주 국장은 “재활용 쓰레기가 있는 이 곳이 바로 도시광산”이라며 “법률 관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경부는 향후 섬유제품 쓰레기의 재활용 가치와 일부 미비한 법령 또는 지침 개정을 검토하고 문제 해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