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휴양지 라스팔마스는
한국인의 다양한 사연 만드는 곳”
신호등이 없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차가 노랑색일 때 달리나? 빨강색일 때 달리나?
그 구별이 안 되는 곳, 문맹률 90%가 넘고 위생관념은 제로 상태에 가까운 나라들이 많은 아프리카.
그런 곳까지 돈을 벌러 오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나와 있는 상사 맨과 공무원들은 모두가 애국자라 할 만하다. 태극기를 보면, 애국가나 아리랑이라도 들으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족이 그리워지는 것은 해외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당연해지는 현상이지 싶다.
아프리카이면서도 유럽풍인 휴양지 라스팔마스에는 이런 저런 한국 사람들의 삶이 많은 사연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서 선단과 선원이 있었고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과 연예인 비자로 나와 있는 아가씨 등 한국 사람들이 많을 때는 2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곳의 산마리노 묘원(납골당)은 잘 꾸며져 시민공원 역할을 해내고 있었는데 한국인의 무덤도 100기가 넘었다. 그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무덤하나. 사진속의 아가씨는 참 예뻤고 꽃다발이 많이 놓여 있었다. 웃는 모습이 너무나 매혹적이었는데...
‘3일 뒤에 귀국한다.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있어.’
캡틴의 말은 아득히 먼 곳에서 울려나오는 듯했다. 아주 무겁게, 그러나 또렷하게는 들렸다. 미스 韓은 언젠가 닥쳐올 이 일에 대해 여러 차례 생각해 왔었음으로 별일 아닌 듯 넘길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가슴 한쪽이 뻥 뚫린 듯 해졌다.
맥이 풀렸고 온몸의 기운이 싹 빠져 나가는 듯 했다. 그날 밤 미스 韓은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셨다. 가끔 미소만 지어 보이면서 엄청 마셨다.
3년 전 캡틴은 만선의 기쁨을 선원들과 술로 풀었다.
‘야, 청주 한씨는 여자들이 정기를 다 차지 해버렸어. 이조시대에 8왕비나 나왔거든. 그래서 말이지 남자들은 다들 쭉정이 뿐이라구.’
후한 팁과 함께 최고의 매상을 올려주었다. 그날 이후 동성동본의 인연으로 친해지면서 미스 韓에게는 든든한 후원자로서 오빠처럼, 마음속에 꼭꼭 심어둔 연인처럼 캡틴이 자리 잡아 갔다.
캡틴과 헤어져 동료와 집으로 돌아온 미스 韓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잠시 생각했다.
‘그래 3일이나 남았어, 그 뒤에는 다시 생각해서 하기로 하자’
곧 술판이 벌어졌다. 음악의 볼륨은 한껏 높아져 있었다. 모든 술병은 다 뜯어졌고 차례로 비어져갔다. 친구들과 비틀거리며 춤추고 횡설수설하며 광란의 시간을 흘러 보냈다.
새벽녘, 술도 떨어졌고 더 이상 떠들고 흔들어댈 기운도 없었다. 그때 미스 韓이 난간쪽으로 다가갔다. 발을 헛디딘 것인지 뛰어내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갑자기 아파트 창밖으로 사라졌다. 미스 韓은 아파트 바깥의 큰 나무에 걸려 있었다. 구급차가 오고 미스 韓은 나무에서 내린 다음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무에 창자가 깊이 박혀 피를 많이 쏟은 상태였다.
아침햇살이 퍼질 무렵 미스 韓은 갔고 사진 속에 그렇게 남겨져 전설인양 사연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