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81) "잡스는 사실 디자이너였다"
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81) "잡스는 사실 디자이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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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 중 하나는 그의 놀라운 프레젠테이션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프레젠테이션. 애플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된 것은 순전히 그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 그의 어떤 점이 특별했을까? 

Femme la montre
‘시계를 찬 여인 Femme la montre’ 피카소가 그린 이 그림의 가격은 물경 2000억원이다. 나는 피카소의 이 그림이 왜 그렇게 비싼 지 왜 그가 위대한 화가인지 잘 모른다. 사실 설명해 줘도 공감하기 어렵다.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Aesthetic 심미안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개개인의 지능이 차이나는 것처럼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극히 주관적인 감각이며 노력에 의해 획득한 형질이 아니라 타고난다. 심지어 같은 사람에게도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배경에 따라 역치가 다르다. 청각으로 전해지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시공을 초월한 공통된 감정을 주는 것에 비해 시각을 통한 아름다움은 공간이나 시간에 따라 다르고 신분에 따라 다르며 남녀 차이도 크다.

찢어진 가느다란 눈매를 우리는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백인들은 매력적으로 보기도 한다. 처음에 우리는 아이폰의 혁신적인 기능 때문에 감동받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현재의 아이폰 구매자들은 예쁘기 때문에 열광한다고 대답한다. 수십년간, 경쟁업체들이 기능은 따라오거나 이미 추월하기도 했지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바로 Aesthetic, 심미적 요소였다. 왜냐하면 심미안은 노력이나 훈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잡스의 심미안은 거대한 역치를 가졌다. 그에게 미적 감동을 주려면 어마어마하게 예뻐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성격이 까다로워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부분이라도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챙겼다. 그의 디자이너들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잡스의 미학에 대한 헌신은 애플 성공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의 비전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아름답고 혁신적이며 공감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적 완벽함에 대한 그의 심미안은 애플 제품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술산업과 디자인 표준을 세우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

iStock

‘Connecting Dots’ 기획력
잡스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팔았지만 그에게 혁신적인 기술이나 첨단 테크닉은 전혀 없었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들을 유효 적절하게 연결했을 뿐이다. 디자이너는 기획자이다. 옷을 설계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수많은 데이터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하여 아름다움, 기능, 편안함, 새로움, 가성비 같은 것들이 얻어진다. 그것을 기획력이라고 한다. 물론 점들dots 즉, 재료가 많을수록 더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쉽다. 그 때문에 우리는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재료가 많아도 그것들을 적절하게 연결하는 데 실패하면 아무 소용없다.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게 하는 알루미늄 포장은 NASA가 수십년 전 로켓의 방열을 위해 개발한 기술이다. 알루미늄이 적외선을 97% 반사한다는 사실이 바로 ‘Dot’ 이다. 그 팩트를 거꾸로 식품 냉동을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기획력Connecting Dot 이다. 심미안과는 달리 기획력은 노력이나 훈련에 의해 확장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종종 창의력 이라고 부른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힘이라고도 한다. 

'One More Thing' 발표력
미국 NBC의 유명한 TV 드라마였던 ‘형사 콜롬보’는 용의자를 안심시키는 질문으로 방심하게 만든 다음, 갑자기 뒤돌아서 “잠깐 한가지 더” 라며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용의자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극적인 장면이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그의 대사 “One more thing”은 이 드라마의 아이콘이 되었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이 탁월한 이유는 청중들을 ‘기대감’ '놀라움’ '클라이맥스' ’기억 각인’ 이라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어지도록 선택설계 했다는 점이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부분이 바로 마무리에 해당하는 ‘기억의 각인’ 이라는 요소이다. 이를 위해 그는 청중의 기억 속 편린에 자리 잡은 ‘형사 콜롬보의 “One more Thing”이라는 아이콘을 전격 사용하였다.

이 대사와 동시에 보여주는 콜롬보 특유의 제스처는 청중의 주의를 효과적으로 사로잡기 위해 깜짝 요소를 사용한 것이다. 청중은 대형 화면에 떠오른 그 유명한 대사를 보며 ‘콜롬보의 그것’이라는 연상작용을 일으켜 이의 연관성을 매체로 순식간에 대뇌피질의 우측해마에 각인된다. 프레젠테이션의 다른 모든 건 잊어도 이 부분만은 누구나 기억하는 이유이다. 

뛰어난 심미안, 천재적인 기획력, 탁월한 발표력은 잡스와 애플의 성공을 상징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 세가지 능력이 바로 패션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재능이다. 잡스는 세가지 능력을 한꺼번에 보유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였던 것이다. 

이 글을 끝으로 ‘안동진의 텍스타일 사이언스’ 기획연재를 마무리 합니다. 이후 글은 네이버 ‘안동진의 섬유지식카페’에서 계속될 예정입니다. 2021년부터 4년간 이 글을 포함, 81회의 기획연재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한국섬유신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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